Writings

동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글 : 동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직도 나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렵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이것저것’ 하며 ‘그럭저럭’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를 명확하게 설명해줄 직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는 일 없이 놀고만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백수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설명하려면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나름의 굵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름보일러의 충격 나는 중학교를 4년 동안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1년 동안 대안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대안학교는 지리산 산내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아침마다 걷던 등굣길은 아파트에서 산자락으로 변했고, 수업은 골라서 들었기 때문에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엔 처마 밑에서 낮잠..

[책 읽습니다 ②]선생이라는 ‘일’ - 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

Writings/차명식의 <책 읽습니다> 길드다(多)

글 : 차명식 (청년길드)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나를 보통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좀 익숙해졌다 싶은 녀석들은 쌤. 딱히 그리 부르라 말한 적은 없지만 어느 사이엔가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마 녀석들이 느끼기에 이 시간은 책을 읽고 덤으로 이것저것 배워가는 시간 정도일 테고, 그것들을 가르쳐주는 나는 자동적으로 선생님이 된 것이리라. 그러니까 녀석들에게 선생이란 곧 가르쳐주는 사람인 셈이다. 헌데 때때로 드는 의문은 과연 선생에 대한 녀석들의 정의가 합당한가 하는 점이다. 수업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는 아이들과 시시한 잡담과 인사를 나누고, 책에 대한 느낌과 인상 깊게 읽은 부분 그리고 그 까닭을 나눈다. 책 속의 질문들을 좀 ..

고은, <말을 찾아 삼만리>

글 : 고은 일반중학교에서 대안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날 바라보던 성택이의 표정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런저런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렸는데, ‘일찐’이라 불렸던 성택이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유일하게 3년 간 같은 반을 하며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자랐던 사이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성택이는 나에게 대안학교에 가냐고 점잖게 물었다. 그러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이야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만 당시에 대안학교는 문제아들이 가는 곳이란 인식이 팽배했다. ‘나도 안가는 대안학교를 네가…? 왜…?’ 내가 가는 대안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았던 몇몇 선생님들도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기주장이라곤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범생이 왜 대안학교에…?’ 중학교의 첫 국어시간..

지원, <수단이 되는 삶, '왜?'라고 질문하기>

글 : 지원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5년 간 다니던 목공소를 그만두고, 현재 준 백수(반쯤은 프리랜서)가 되었다. 내 삶은 불확실성 속에 놓여있다. 나는 기껏 모아놓은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퇴사 직전 유럽여행에 모두 썼고, 부양해야할 가족은 없지만(어쩌다 보니 함께 살게 된 개 한 마리가 있긴 하다.) 내 가족도 나를 부양해줄 수 없다. 말인 즉, 매달 월세를 내야하고, 생활을 위한 벌이를 해야 한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간단하다. 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장과 사지 멀쩡한 몸, 그리고 5년 간 익힌 목공 기술이다. 누군가는 내가 가진 것을 듣는다면 충분하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

[책 읽습니다 ①] 학교라는 ‘공간’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Writings/차명식의 <책 읽습니다> 길드다(多)

글 : 차명식 (청년길드)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자, 이거 봐. 페이지 수로 들으면 많아 보이지만 두께도 요것밖에 안 되고, 그리고 책 모양 자체가 홀쭉한데다 여백도 많지? 그러니까 한 페이지 당 내용도 얼마 안 돼.” 쉽게 읽어올 수 있는 분량이라고 열을 올려가며 광고를 해봤지만 다들 하나같이 표정이 시큰둥했다. 아무래도 영 약발이 듣질 않는 모양새다. ‘다음 주에 수업할 책은 집에 가서 생각할래요.’ 그런 꿍꿍이들이 훤히 다 보였다. 어쩌겠나, 이 이상 달리 할 말도 없는 걸. 결국 이쪽이 먼저 손을 들고 항복했다. 펼쳐들었던 책을 닫으면서 그대로 수업을 매조졌다. “좀 지루해보일수도 있겠지만 아주 유명한 소설이야. 너희랑 통하는 부분들도 꽤 있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