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민주주의] 고병권, <추방과 탈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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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4

-시즌1/민주주의/세번째시간 후기

-작성자 : 최현민









질문을 이해하기 쉽게 글로 정리하라는 임무와 함께 얼떨결에 후기를 맡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질문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책을 읽으며 순간 스쳐지나간 생각이었습니다.


고병권이 쓴 <추방과 탈주>에는 국가권력에 의해 추방된 주변인이 소개됐습니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국가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이런 문제가 왜 반복, 심화될까를 고민하던 중,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주권자의 자격으로 법의 구속을 받지 않은 채 행사되는 국가권력은

불합리하게 약자들을 삶의 끝자락으로 몰아 세웁니다.

그런 국가권력에 부당하다고 문제제기 할 때,

돌아오는 대답으로 "우리는 원래 법 위에 있는 존재야. 그게 국가권력이야"라는 말이 합당하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국가권력이 법보다 위에 있다는 전제가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주권자로서의 국가권력은 이 점에서 합법적으로 치외법권 지대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주권의 이름 아래서는 어떤 끔찍한 폭력도 적법하게 행사될 수 있다."(추방과 탈주 p35)


이 말처럼, 주권자라는 이름으로 예외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어쩌면 국가권력의 본모습입니다.

그에 따라 국가권력은 불가피하게  주변인을 만들어냅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는 배제됩니다.

그렇다면 그 소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는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는건가요?

그렇다면 대중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채 여러 질문만 정처없이 떠오릅니다.


국가는 규정되지 않은 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을 시스템 안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명석 형이 얘기했습니다.

국가 시스템에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구가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에 끌어오는 것입니다.

포섭은 배려가 아니라고 합니다.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는 청소년에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개인저으로 인상깊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확실하게는 와닿지 않아 더 자세히 얘기 듣고 싶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뒤늦게 정체성을 고민하고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는 대학생을 위한 말로

'대2병'이 새롭게 등장하는, 이런  현상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 후기를 쓰다보니 밀양 송전탑 조사를 맡았다는 걸 뒤늦게 기억했습니다.

하마터면 깜빡할 뻔 했네요.

조사도 알차게 준비하고, 맛있는 간식도 함께 챙겨서 가겠습니다~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3. 5. 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