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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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원


    나는 왜 하필 많고 많은 일 중 목수 일을 하게 되었나?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 목공소가 문탁 바로 옆에 있었고, 내가 전역할 당시 마침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남들이 알바 하듯,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용돈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술도 마시고, 친구들도 만나야했다. 그럼 왜 5년씩이나 목공일을 했나?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누구나 그렇듯,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에 친구들이 내가 목수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지었던 표정은 한마디로 ‘경외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환상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혹은 우쭐함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해) 목수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친구들에게 설파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설파했던 꿈의 직업과 달리 나에게도 월요병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출근을 빼먹은 날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5년은 ‘관성의 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내가 일한 목공소에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런 동기부여도 얼마간 분명 큰 역할을 했다.



동천동의 작은 목공소 월든

    내가 일한 목공소의 이름은 ‘월든’이다. 처음엔 나도 몰랐지만, 월든Walden은 데이빗 소로우[각주:1]의 책 제목이자, 메사추세츠 주의 호수 이름이다. 멋지지 않나? 이 책은 시장만능주의와 그로 인한 자연파괴에 대한 저항으로,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산 소로우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만큼, 목공소는 시장만능주의와 자연파괴를 지양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시장만능주의와 자연파괴를 지향하는 기업은 없다. 그것이 말 뿐일지라도.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개인 혹은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들의 말보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월든은 사람의 몸 뿐 아니라 자연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익히 알려진,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많이 쓰이는 MDF[각주:2], PB[각주:3]등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신 집성목[각주:4]을 사용한다. 내가 월든에서 일 한 첫날, 목수님과 손님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그 이유를 들었다. 간단하다. MDF와 PB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톱밥, 혹은 나무 가루로 만들어진 것이 맞지만, 그들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접착제를 다량 사용한다. 어떤 접착제를 사용했는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중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그것의 가격이다. 너무 싸다! 똑같은 부피의 가장 싼 소나무 집성목과 MDF의 가격을 비교해 보아도 5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인체나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싸다는 이유로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목수님은 손님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내가 그런 설명을 듣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설명, 때로는 싸움(?)이, 월든에서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월든은 항상 “우리는 원목만 쓴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러저러하니 원목을 써야한다”라고 설득한다.





    환경을 대하는 월든의 이런 태도는 월든이 만드는 가구나 가구를 주문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있다. 기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격을 내고, ‘상대적으로’ 가격을 협상, 책정한다. 똑같은 책상이라도, 월든에선 누가 주문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상대적 가격’이란 말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공평함’이란, 사실상 ‘동등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공평함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똑같은 가격의 과일을 어떤 아이는 자기 용돈으로도 마음껏 사먹을 수 있지만, 어떤 아이는 울고불고 엄마에게 졸라도 먹을 수 없는 경우가 그렇다. 시장의 공평함이, 많은 경우 더 큰 차별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구 시장에선 이런 차이가 바로 자재의 차이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형편이 넉넉잖은 집에 가보면 대부분의 가구가 MDF나 PB로 만들어져있다. 형편이 좋은 집은 많은 경우 원목가구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가격을 협상하는 일이나, 상대방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구를 만들 때 손님의 형편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일이 집을 찾아가볼 수도 없다. 그래서 견적을 낼 때 대화를 많이 한다. 이는 물론 주관적인 판단에 의지하지만, 꼭 가구를 만들지 않더라도, 대화의 과정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분명 긍정적이다. 가구도 가구지만, 환경에 대한 생각, 상품에 대한 생각, 나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본주의,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매번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는 소로우의 월든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견적을 내기 시작한 것은 일을 한지 약 1년이 지나서부터다. 대략적인 자재의 가격을 익히고, 수종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어디에 어떤 나무가 어울릴지에 대한 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자 목수님은 견적을 내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그동안 목수님이 냈던 견적을 가이드라인 삼아 견적을 냈기 때문에 그 일이 크게 어렵진 않았다. 다만, 이때부터 나는 갈등과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가격을 정하는 일은 목공소 운영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되었고, 수많은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목공소 월든이 책 속의 월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공소는 분명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고 그것을 유지하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우리 활동의 목표는 자급자족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 목수님과 내가 생활할 수 있는 임금을 가져가는 것이 목표다. 더군다나 우리는 호숫가에서 홀로 지낸 소로우와 달리,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좌충우돌 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목공소 첫날 보았던 목수님의 MDF에 대한 설득이, 때론 싸움이 되기도 하는 이유다. 가령 어떤 사람이 가구를 주문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듣는다. 크기부터 시작해서 취향과 스타일, 필요, 가구가 놓일 곳의 온도나 습도까지. 그리고 이런 노력은 분명 값나가는 상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 보다는 그에게 더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 그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당사자가 우리의 대화를 서비스라고 생각하며 구매자가 되는 순간, 가구는 가격만 남고, 관계는 정지한다. 대화는 흥정으로 축소된다.

    그러나 우리는 임금을 가져가야하고, 월세와 전기세를 내야하며, 나무를 사야한다는 현실적 상황 속에 놓여있다. 대화가 잘 풀리지 않더라도, 어쨌든 일을 해야 한다. 매번 견적을 낼 때마다 나는 이런 질문에 부딪힌다.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대방이 생각하는 원목이 우리가 생각하는 원목과 다를 때, 상대방이 생각하는 가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가구와 다를 때, 상대방이 우리의 가구를 그저 서비스로, 상품으로, 소비로 받아들일 때, 설득에도 한계가 있고, 선택적으로 일을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부딪히는 질문은 주로 나에게 묻는 것으로 끝난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다른 질문이 생긴다. 어차피 소비가 될 일이라면 “MDF를 쓰면 안 되나?”, “돈이라도 비싸게 받으면 안 되나?”


    

무엇이 더 나쁜 일일까?

    어느 날 목공소에 후배가 한 명 찾아왔다. 디자인을 배우고 있는 친구였는데, 졸업 전시에 쓸 전시용 좌대와 가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돈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전시용 좌대는 가구가 아니다. 전시가 끝나면 용도를 잃어버리고 쓰레기가 되는 일회용품에 가깝다. 몇 가지 습관적인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친구에겐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우린 주로 원목을 권유한다.’든지, ‘MDF는 쓰고 싶지 않다’든지, ‘예산이 얼마나 있니?’하는 등의 말들. 이어서 스스로에게 떠오른 질문은, ‘이걸 만들겠다고 해, 말아?’    

    그러나 ‘답정너’다. 사실 내가 하지 않더라도 그 친구가 무사히 졸업을 하려면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분명히 MDF를 사용할 것이며, 내가 돈 없는 그 친구에게 애써 부르고 싶지 않은(그 친구에게는 비쌀) 가격을 나보다 훨씬 쉽게 부를 것이다. 나는 결국 그 일을 했고, 끝내 외면하고 싶던 작업물의 폐기까지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내가 스스로 위안을 삼았던 것은, 좀 비싸긴 해도 우리가 MDF 대신에 덜 해롭다고 생각되는 일반합판을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일과 비슷한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내가 처하는 선택의 상황들이 늘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시장이나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아주 미미한 것들뿐이다. 위에 든 예처럼 MDF 대신 합판을 쓰고, 합판 대신에 원목을 쓰는 일. 가구를 더 오래 쓰도록 에어타카 대신 나사 결합이나 장부맞춤을 하는 일[각주:5]. 싸고 빨리 마르는 페인트 대신 천천히 마르고 시너 냄새가 덜 나는 오일을 쓰는 일. 그러나 그 마저도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언젠가 한 번은 인터넷으로 목공소가 주로 사용하는 집성목의 새로운 종류에 대해 찾아보던 중, 집성목을 제조하는 해외의 공장 홍보영상을 보게 되었다. 난 그 규모에 놀랐고, 나무들이 베어져 나간 숲의 커다란 구멍들에 놀랐다. 몇 년 전 산림관련 국제기구인 FAO는 목재를 위한 벌목에 의해 매해 얼마나 많은 산림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지를 발표했다(2016). 이에 여러 국가들은 불법 벌채된 목재에 대한 거래의 제한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중국산 목재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산 목재의 공급이 늘고, 상대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다른 나라의 목재는 재고가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찜찜한 마음에 돈을 더 들여 비싼 목재를 사겠다고 해도, 파는 사람이 없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MDF, 합판, 집성목 중 무엇이 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나는 MDF보다는 합판이, 합판보다는 집성목이, 그리고 중국산 집성목 보다는 캐나다산 집성목이 낫다고 얘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삶을 제한하는 조건들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비단 내가 어떤 목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따위의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상의 선택지일 뿐이다. 현실에서 그런 것은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기권표도 그 나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내가 목수님에게 배운 대로라면, 끊임없이 묻는 일이다. 견적을 내고 돌아와서 여러 번 혼났던 적이 있다. 견적을 싸게 냈네, 비싸게 냈네 하는 것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비싸든 싸든 왜 이런 가격이 나왔는지를 거꾸로 추적할 때, 왜 이런 모양으로 도면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되물을 때, 대답하지 못하면 혼났다. 만드는 일은 그것이 제대로 되려면, 하다못해 나무와 나무를 결합할 때, 피스를 두 개 박을까, 세 개 박을까 하는 사소한 문제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 고등학생과 목공수업을 하는데, 이 녀석이 피스를 세 개 박아야할 자리에 두 개를 박기에 왜 두 개를 박느냐고 물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귀찮아서요.” 그러나 그것도 어떤 경우엔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무언가를 하다 온 녀석이 본인이 딱히 원하지도 않았는데 보내져서 온 목공수업에서 피스 세 개 대신 두 개를 박는 것은 이해할만한 이유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유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 해볼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적거나,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를 찾아내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목수인 것처럼. fin.






  1. Henry David Thoreau(1817~1862), (1854) [본문으로]
  2. MDF, Medium Density Fiberboard 톱밥과 접착제를 섞어서 열과 압력으로 가공한 목재. 입자가 작아 단단하게 결합, 강도가 높음. [본문으로]
  3. PB, Particle Board 톱밥과 접착제를 섞어서 열과 압력으로 가공한 목재. 입자가 커 결합력이 약하므로 MDF보다 강도가 약함. [본문으로]
  4. 집성목, 여러 개의 좁은 원목을 결이 평행하게 배열하여 접착시킨 목재. [본문으로]
  5. 나무와 나무의 결합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자주 이용되는 세 가지 방법은 (1)에어타카를 이용한 결합, (2)나사를 이용한 결합, (3)맞춤이다. (1)본드를 칠하고 공기의 압력을 이용해 타카 못을 박는다. 작업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나무의 수축팽창과 가구에 가해지는 인력에 약하다. (2)드릴과 드라이버를 이용해 나사를 박는다. 가구에 가해지는 인력에는 에어타카 결합에 비해 강하지만, 나사의 재질과 수축팽창을 겪는 나무의 성질을 고려하면 부족함이 있다. 에어타카에 비해 작업 속도는 느린 편이다. (3)서로 다른 부재를 깎거나 구멍을 파서 끼우는 결합 방법이다. 나무와 나무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수축팽창, 인력 모두를 적절히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본문으로]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4. 30.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