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뒤통수를 때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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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수업 첫 번째 시간에, 고은이 누나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뒤통수를 맞았다’라는 얘기를 했다. 나도 평소에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서 뒤통수를 잘 맞는다.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뒤통수 맞은 이야기들을 한번 써보려고 한다.

 

  나의 뒤통수를 때린 첫 번째는 퀴어에 대한 것이다. 중2 때 우연히 ‘성소수자 학부모’에 대한 기사를 보고 욕인 줄로만 알았던 '게이'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전까지 같은 성별을 성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는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 기사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더 충격적인 댓글이 달렸고, 나는 괜히 화가 나서 ‘성소수자’를 검색해보았다. 그들은 굉장한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었고, 모두가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무엇이 잘못되고 문제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무성애자, 범성애자, 젠더 퀴어 등 꽤 많은 퀴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성애의 스펙트럼을 단정 지은 것이고, 굳이 성지향성을 정할 필요 없다는 것에서 뒤통수를 한대 더 맞았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고 이것이 차별을 부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통수를 세게 또 한 번 더 맞았다. 이렇게 첫 번째 뒤통수를 맞고 나는 성소수자 운동가가 되었다 ― 활동은 안하지만.

 

  두 번째는 페미니즘이다. 작년, 여성의 임금격차와, 몇몇 직업 앞에 붙는 ‘여’, 여성이라서 겪어야 하는 두려움과 폭력 등 ‘여자라서 힘든 것’을 나열해놓은 한 인터넷 글을 보고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남자들은 이것을 딱히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고, 나도 그랬다. 여성이 이런 불편들에서 얘기하면 한국남자들은 여성들은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오히려 화를 낸다. 성재기와 남성연대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 여성 혐오적인 신조어들이 판을 치는데,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탄스러웠다. 여성혐오를 미러링 하는 사이트인 ‘메갈리아’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한국남성들의 욕을 한바가지 먹고 있을 때도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혐오발언은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어째서 남자에 대한 혐오발언은 문제가 되지?’ 거기에 의문을 품고 인터넷으로 공부한 페미니즘은 정말 내 뒤통수를 크게 때려주었는데, 그 결론은 ‘역차별은 없다.’였다. 남성들이 주장하는 ‘남자도 차별받는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일반화한다’는 말들은 가부장제가 만든것이고, 여성이 남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 남성이 남성을 차별한 결과였다.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남성들의 답답한 면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 활동은 안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건 퀴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이들을 욕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게 있어 퀴어와 페미니즘은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주었고, 나는 퀴어학과 여성학에 굉장히 많아졌다.

 

  세 번째는 예술에 대한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고 배우길 원해서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입시미술과 같은 것들만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똑같이 묘사하는 것, 예쁘게 보이는 것만 배우게 되어 이것이 진짜 미술이고 진리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무닭 움직임 연구소 퍼레이드, 캠프, 작업과 최근에는 공방수업을 하게 되면서 원래 배우던 것들이 한심한 짓인 것을 깨닫고,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미술사, 여러 해외작가 등 예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만화, 일러스트 따위의 그림만 그리던 내가 말이다. 또한 나는 한국 예술의 안타까운 면들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장차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가서 진짜 예술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한국에서 배울 수 없는 미술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공부한 인문학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깊게 생각해보고 뒤통수를 맞은 것은 수없이 많다. 특히나 기억에 남 것은 자본주의와 환경에 대한 것이다. “과거의 사치품이 오늘날에는 꼭 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자가용을 필수라고 생각하지? 교통이 이렇게 치밀하게 잘 구성돼 있는데, 또 왜 유행을 따라가면서 많은 옷을 사는 거지? 나중에 버릴 것이 분명한데, 또 왜 꼭 사야만 하는 거지? 만들면 되고, 재활용하면 되는데. 이런 무의식적인 과소비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지만, 그럼에도 이런 소비중독으로 자본주의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리 비싼 것을 사도 자꾸 불만족할 것만 같다고 느꼈다. 비싼 소비를 하면 내 인생이 더 행복해질까? 더 나아가서 돈이 왜 필요할까? 결국에는 환경만 나빠질 것이 뻔한 데도 말이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 뒤통수를 죽도록 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물질만능주의사회. 자본주의사회. 이런 망할 세상을 때려 주고 싶었다.

 

  인문학 공부는 내가 나중에 독립할 때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에 대해, 나의 가치관, 이상적인 삶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보게 해줬고, 확실하게 해줬다. 내가 여태껏 뒤통수 맞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내 미래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나는 프랑스에 갈 거고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할 것이며, 인종, 성적지향 상관없이 많은 친구들을 사귀며 그 사람들과 나누고, 여행 다니며 물건을 사기보단 재활용하거나 교환하거나 만들고,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인문학, 페미니즘 공부도 할 것이다. 남이 보기엔 가난하고 한심해보이겠지만, 가난 중에서 행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문학은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3. 11.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