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길드다 2018, 마이너스 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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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은

   공부로 돈을 벌겠다고 일층에 길드다 공간을 꾸렸을 때, 우리 앞으로 문탁 네트워크가 있는 이층에서 500만원이 뚝 떨어졌다. 물론 500만원이라는 금액에 대해서는 온도 차이가 있었다. 목공 일을 하는 지원에겐 그다지 큰돈이 아니었을 터이고,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동은에게는 꽤나 큰 액수였을 터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짜 문제가 되었던 건 500만원이라는 금액이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이 돈을 받았으면서도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돈인 것 마냥 굴었다. 다른 멤버들도 나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우리는 장장 5년을 같이 공부했지만, 함께 돈을 만져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500만원 앞에 얼어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을 할지 논의하기 위해 엠티를 빙자한 워크샵도 가야했고, 회의를 하면서 밥도 같이 먹어야 했다. 우리가 처음 부딪힌 난관은 식사를 공금으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사비로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엠티를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길드다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니까 공금으로 사먹는 게 어때?” “그렇지만 엠티를 다녀오기 전에 이미 길드다 결성을 축하하는 식사를 했잖아.” 별다른 경험치가 없었던 우리는 도저히 문제를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결국 회계의 제안으로 어떤 때에는 공금으로, 어떤 때에는 사비로 식사를 했다.


 

>>> 처음으로 같이 차려본 점심, 4명이 함께 있는 게 아직은 어색하다


 


판단근거가 있을 때, 판단근거가 없을 때

   우리는 회계 담당자를 고정해두지 않고 돌아가며 맡기로 했다. 내가 그 첫 주자가 되었다. 문탁 네트워크(이하 문탁)에서 회계를 맡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드다 회계는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의 회계와 완전히 달랐다. 우선 내가 교육프로그램 회계를 맡을 당시에 각 프로그램은 재량껏 운영되었다. 문탁에서는 많은 일들이 지난한 회의의 과정을 거쳐서 결정된다. 우리의 프로그램 또한 초창기에는 그런 방식으로 꾸려졌다. 그러나 마을교육팀 ‘주권 없는 학교’가 해체되자 우리에겐 프로그램을 함께 논의할 단위가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각 팀은 프로그램 짜는 일도,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그럼에도 교육 프로그램의 회계는 별 탈 없이 굴러갔다. 굴리는 돈이 얼마 없을뿐더러 돈의 출처가 간단명료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길드다 회계와 교육 프로그램 회계의 두 번째 차이다. 들어온 수강료는 인건비, 문탁 운영회계로 넘길 돈, 실무비로 딱 나눠떨어졌고 통상적으로 책정되는 비율과 그 의미도 이미 많은 논의 끝에 나와 있었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조차 큰 문제가 일지는 않았다. 기준이 되어주는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가자가 많지 않으면 튜터비의 비율이 늘거나 운영회계에서 돈을 더 지급했다. 이례적으로 참가자가 많으면 튜터비의 비율은 줄어들고 운영회계로 가는 돈이 늘어났다.

   그러나 길드다는 새로 결성된 팀이었다. 길드다에서 회의를 빼면 시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는 회의를 많이 했다. 매주 모여 몇 시간씩 회의를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우리는 많은 부분 서로를 이해하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할 말도 많았다. 문제를 놓고 얼마든지 치고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치고받다 보면 각자가, 또 우리가 새로운 국면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팀이 생긴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에게 쌓여있는 신뢰는 오랜 시간 묵은 것이었다. 팀이 되어 지난한 회의의 시간을 갖으면서 개인들의 결합이었을 때 생겼던 문제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중학생 교육프로그램에서 발생했던 동은과 명식의 마찰은 더 이상 둘 만의 감정문제로 남지 않게 되었다. 일을 제때 완수하지 못하는 동은의 문제의식으로, 자신과 이질적인 존재를 만나는 게 어려운 명식의 문제의식으로 전환되었고, 각각의 문제의식은 우리 넷의 공통적인 과제가 되었다.

   많은 문제들이 공통과제로 전환되는 와중에도 치열한 대화의 주제가 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돈이었다. 물론 전혀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 또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정해야 했다. 공간 사용료는 얼마나 낼 것인가, 실무 관리자에게 돈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판단 근거가 없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모습은 꽤나 재미있다. 다들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 제안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의견을 보태고, 잠시 동안 침묵이 맴돌다가 그 의견이 낙찰된다. 당시에 원활한 토론이 되지는 못했던 건 각자 가진 감각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명식은 부모님 집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지냈지만, 동은은 자취를 위해 알바를 하며 비교적 빠듯하게 지냈다. 지원은 나에 비해 많이 벌지만 거의 돈을 남기지 않았고, 나는 지원에 비해 적게 벌지만 저금만은 꼭 하려고 들었다.


 


>>> 각자의 이름이 박힌 길드다 명함을 받던 날, 본격적으로 길드다를 시작하게 된 기분이 들었다




내꺼 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길드다가 공부로 자립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만큼, 각자의 생계는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가 됐다. 나와 명식은 교육프로그램으로 돈을 버는데, 많이 쓰지 않아서 어찌어찌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원역시 목공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문제가 되었던 건 동은이었다. 동은은 언니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교육프로그램이 폐지되어서 수입은 줄어든 상태였다. 나는 길드다에서 수습비 명목으로 생활비를 지원해주면 어떻겠고 제안했다. 동은이가 하고 싶어하는 디자인 일로는 당장 돈 벌기가 어려웠다. 올 한 해를 수습기간이라 생각하고 디자인 일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결국 동은은 수습비가 아니라 디자인에 일에 대한 건 당 활동비를 조금씩 받으며 알바를 하게 되었지만, 결과와는 별개로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돈 문제에 대한 다른 의견을 보였다.

   나의 제안에 가장 빠르게 반응을 보인 건 동은이었다. 당시 동은이는 주위에서 무언가를 받는 일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뉴욕 여행경비 일부를 길위기금에서 받았을 때 동은은 기뻐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길위기금은 문탁에서 공부하는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기금이다. 큰 수강료를 지불해야하는 이는 세미나 회비를, 일하며 공부하기가 빠듯한 이는 생활비를 받는다. 그러나 길위기금은 공돈이 아니다. 돈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금액으로 그 가치를 측정하는 게 아니라, 돈이 흘러 새로운 활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돈 쓰는 방법이다. 길드다에게 투척된 500만원 역시 비슷한 선상에 있었고, 자연스레 길드다 또한 500만원이 새로운 활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돈 쓰기가 새로운 활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동은에게나 길드다에게나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나의 제안에 당황한 건 동은 만이 아니었다. 길드다의 다른 멤버들 역시 당황해했다. 동은의 생활비는 공적인 돈이 아니라 사적인 돈이니 길위기금에서 돈을 받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동은이 만약 수습비를 받는다면 길드다의 디자인 작업 전반을 맡게 될 터였다. 결국 생활비로 쓰기는 매한가지인데, 교육프로그램으로 받는 튜터비는 공적인 돈이고 디자인 일을 위해 받는 수습비는 사적인 돈일까? 길위기금은 사적인 돈을 받는 곳일까? 사적인 돈과 공적인 돈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또 누군가의 말마따나 매달 몇 십 만원씩 통장에서 빠져나간다면 금세 500만원이 동날 터였다. 그러나 이 제안에 당황한 이유가 그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멤버들이 돈이 걱정되어서 공금쓰기를 언제나 어려워 했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복사비는 거리낌 없이 길드다 회계에 청구했다. 자신의 돈을 들여 인쇄해야 할 발제문이나 개인 활동 자료까지 말이다.

   돌이켜 보면 동은의 생활비를 지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과 복사비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길드다의 돈을 쓴 것은 비슷한 맥락 위에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길드다의 돈을 ‘나’의 돈처럼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이 쓰임이 적절한가, 이 금액이 적합한가의 기준이 모두 ‘나’였던 게 아니었을까? 우리가 길드다의 돈을 ‘나’의 돈으로 여겼던 것은 각자가 탐욕스러운 인물들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또래는 개인적인 소비 외의 다른 방식으로 돈을 써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돈을 생각하듯이 길드다의 돈을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만일 새롭게 돈 쓰는 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길드다의 돈을 계속해서 각자의 기준대로만 볼 게 분명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만이 아니다

   길드다는 단 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팀은 아니다. 길드다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는 주위 친구들과 접촉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마찰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던 건 길드다 멤버도 아니고 문탁에서 오랫동안 공부하지도 않았던 친구들에게 줄 페이를 논의하게 되었을 때였다. 나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하면 한 시즌인 10주 당 50만원을 받는다. 사전 회의를 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연장 수업도 하고, 여행을 가게 되면 자비로 부담하기까지 하니 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주 적은 돈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모든 일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지 않고, 받는 만큼만 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돈은 관계를 맺고 활동을 해나가는 데 유용한 매개물이 된다. 각자는 무엇을 하든 자신의 역량 강화를 위해,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얼마 전 우리에게 조언하러 온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일들을 네 분이서 다 하신다고요?” 어떻게 넉넉하지 않은 돈으로 많은 활동을 꾸릴 수 있냐는 것이다. 거꾸로 우리는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만 움직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다른 조건이 갖추어 진다면 사람들은 돈에 덜 의존하면서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길드다의 멤버들은 어느 날엔 회계사, 작가, 디자이너가 되었다가도 어느 날엔 판매원, 프로젝트 기획자, 행사 사회자가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공부를 통해 기존의 사회와는 조금 다른 사회를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으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는, 물신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감각은 우리 네 사람을 벗어나기만 하면 바로 그 힘이 약해진다. 왜냐면 첫째로 이 감각은 이론의 영역 보다는 경험의 영역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 또래는 대개 기반 없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줬다는 것을 명분삼아 적게 돈을 주며 착취하는 ‘열정페이’ 문제를 겪는다. 물론 길드다엔 착취를 하거나 당하는 자가 따로 있지 않고, 각자는 반드시 주체가 되어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열정페이 문제와 결을 달리한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열정페이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두 번째는 우리의 감각이 외부의 기준에 만났을 때 마찰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원은 우리와 함께 한두 달 간 길드다 브랜딩과 포스터 디자인을 한 친구에게 50만원을 주자고 했다. 우리에겐 큰돈이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적은 돈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되자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왜 같은 작업을 해도 그 친구는 페이를 받고 나는 받지 못하는가? 내가 디자인을 비롯해 3달 이상 시간을 쏟은 튜터 일과 그 친구의 한두 달 한 작업의 가치가 같다는 것인가? 일반적 기준에선 더 높은 페이를 받아야 하는 영상작업을 한 친구에겐 왜 적게 쳐주는가?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을 뒤로한 채 일단 친구들과 작업을 시작했다. 이 친구들은 짧은 시간이라도 우리와 함께 세미나를 하거나 했었던 친구들로, 사회적인 기준보다 적은 페이를 주는 것을 이해했다. 시각디자인을 하는 친구에게 브랜딩과 포스터 디자인작업을 부탁했고, 영상편집을 하는 친구와 미니강의를 찍어서 유투브에 업로드 했다. 우리가 부탁했던 작업은 우리에게‘만’ 도움 되는 작업은 아니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들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시각디자인을 했던 친구는 직장을 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은 디자인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우리는 그의 작업을 최대한 존중했다. 디자인의 현란함보다 내용물의 의미를 더 살리고 싶다는 그의 작업방향에 따라 단순하고 심플한 디자인이 채택되었고, 비록 문탁쌤들의 원성을 듣기는 했지만(“아니 이게 포스터란 말이니…?”) 서로에겐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업이 되었다. 영상작업을 함께 했던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상 일을 하다 보면 주어진 페이와는 별개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길드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돈을 많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최대한 저를 배려해주고 합의점을 맞춰가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도 단순히 하청받은 영상을 만드는 일이 아닌 제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들며 재미를 느꼈고….”


 



공산품 팀과 청년페어를 준비하던 밤

 



돈이 굴러 그 액수가 배가 되지는 않았지만

   시각디자인을 하는 친구에게 주기로 한 돈이 결국 사회적인 기준에 입각했었다는 점과, 사회적인 기준을 떠올리며 하게 되었던 나의 이상한 질문들은 우리가 돈 쓰기에 대해 얼마나 빈약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주었다. 우리는 친구와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에게 주는 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돈을 쓸 때는 어떤 방향을 지향하며 써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작업이 꼭 돈으로 그 가치가 환산된 것은 아니었다. 활동들의 성과가, 함께 활동을 했던 주변 친구들의 소회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500만원을 거의 다 사용했다. 500만원의 대부분은 4명의 작업을 위한 돈으로 사용되고, 거기서도 조금 더 나눠서 멀고도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데 사용하고, 또 더 나눠서 생산프로젝트를 하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생산프로젝트 공(共)산품은 빵을 만드는 친구, 랩을 하는 친구, 목공이나 디자인을 하는 친구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같이 공유하고 그것으로 자립하려는 프로젝트다. (우리에겐 큰돈이었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그렇게 크지 않은 돈으로 친구들은 각자의 작업물을 만들어냈다. 누군가에겐 이 작은 돈이 꼭 필요했고, 누군가에겐 함께 작업하는 프로세스가 혹은 길드다의 팀워크가 도움이 되었다. 우리의 얼마 되지 않는 이 돈이 굴러가면서 배가 되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길드다의 관계를 확장시켰다는 건 확실하다.

   물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들고 나는 돈이 적은데, 이 돈으로 자립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번 고비는 다행히 좋은 친구들과 무사히 넘겼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이들과의 관계는 계속해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돈을 써야하는지에 대해서는 2018년만큼이나 헤매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돈에 관한 아젠다가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어떻게 벌 것인가’로 옮겨갔다. 나 또한 돈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돈은 쓰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소비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중국과 방글라데시에선 강물의 색깔로 올해 유행하는 색을 알 수 있단다. 내가 사지 않는다고 해서 이 흐름이 당장 끊기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 흐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물건을 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해를 정리하며 돈을 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돈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보단 돈을 ‘다른 방식으로 쓴다’는 생각을 할 때 돈의 문제에 말리지 않고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그러니까 문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쓰지 않을까’가 아니라 ‘돈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가 된다. 돈을 쓰면서도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그렇게 돈을 쓰고 있었다. 최근에 돈을 가장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길드다에서 번 돈으로 길위기금과 길드다에 특별기금을 냈을 때였다. 겨우 10만원, 5만원이라 금액적인 면에서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특별기금을 냄으로써 내 돈이 꼭 내 돈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하게 되었다. 내 돈이지만 내 돈은 아닌, 내 돈은 아니지만 내 돈인 이 돈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앞으로 내게 남은 과제다. fin,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9. 1. 2.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