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나는 친구가 많다>

728x90

* 이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명식’을 제외하곤 모두 가명입니다.




 

글: 고은


   문탁 네트워크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다. 10~20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대부분이 40~50대이다. 선생님들과 친구처럼 지낼 때도 있지만, 또래 친구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가끔 나이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선생님들이 자식이나 친정 이야기를 하실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피부로 와 닿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대로 내가 애인이나 또래친구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선생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역시 젊군”과 같은 감탄사나 조언의 말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같이 머리를 쥐어 싸고 고민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기도 하다.

   한 일 년 동안 또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니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문학 수업을 열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생님이나 선배이기보단 친구로 또래들을 만나고 싶었다. 대상을 청년으로까지 늘리고, 수업이 아닌 동아리 형식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이미 인문학 수업을 함께하고 있었던 명식과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고, 우리는 이를 <길 위의 인문학 동아리>(이하 <길 위>)라고 이름 붙였다. 책에서 읽은 것들을 길 위에서 직접 부딪혀보자는 의미였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길 위>를 시작했다.



어려운 책 읽기는 어려워

   이미 1년간 매주 초등학생들과 반년간 매달 청송의 고등학생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차였다. 친구들이 책만 열심히 읽어 온다면 <길 위>의 첫 프로그램 <길 위의 민주주의>를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나서 보니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책이었다. 친구들은 명식과 내 생각보다 더 함께 읽기로 한 책을 어려워했다. 고병권 선생님이 쓰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와 『추방과 탈주』 같은 경우엔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모임에 오곤 했다. 어려운 책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다 보니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책을 ‘잘’ 독해하는 것보다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는데, 책을 이해하지 못하니 아예 말수가 적어졌다.

   나와 명식은 친구들이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거의 매시간 미니강의를 진행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에 우리는 친구들에게 책을 두 번 이상씩 읽고 오라고 주문했지만, 몇 회가 지나고 난 뒤엔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읽어 오라고 부탁하게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려운 유일하게 책 읽기를 재밌어하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승주는 <길 위의 민주주의>에서 유일한 20대였다. 인문학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 대안학교를 나온 덕분인지 승주는 어려운 책을 읽을 때도 거침이 없었다. 때로 우리는 책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승주에게 질문해서 답하도록 하였다. 승주는 다양한 자신의 의견과 경험을 보태어 세미나 시간을 활기차게 만들었다. 특히 승주와 케미가 좋았던 건 명식이었다. 명식과 승주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책 내용을 정리해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흥미가 있었다. 장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비슷했다.

   명식과 내가 처음 만났던 건 6년 전, 명식이 막 제대를 하고 난 직후였다. 그는 세미나 시간에 책에 관한 자신의 명석함을 한껏 드러냈다. 하지만 막상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가 되면 경직되었고, 내가 작은 장난을 걸기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그의 반응에 굴하지 않고 계속 장난을 쳤다. 시간이 흐르자 장난을 덤덤히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명식은 누구보다 장난을 열심히 치게 되었다. 명식이 치는 장난의 힘은 어린 친구들과 함께 세미나를 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명석한 명식과 처음 세미나를 하게 되면 대부분 똑 부러지는 그의 설명에 깜짝 놀라고, 심한 경우엔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같이 공부를 하다 보면 공부 실력으로 위계가 생길 위험이 있다.

   그러나 자신을 놀림거리로 던지면 사람들은 그를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된다. (요새 명식의 장난의 소재는 나이이다. “뭐라고? 이놈들이…. 나 옛날 사람 아니야~”) 명식은 매일같이 승주에게 장난쳤다. 빵을 잘 못 잘랐네, 가위바위보를 못 하네, 음식을 너무 많이 먹네…. 승주는 처음에 명식의 장난에 경직되어 “저 싫어하시죠”하고 몸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난에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승주 역시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튈 위험이 있었지만, 허당의 캐릭터를 잡으면서 친구들과 잘 섞일 수 있었다.


    





“저는 마지막에 말할게요.”

   <길 위의 민주주의> 이후로 책의 난이도를 조정을 신중히 처리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책이 어렵든 쉽던, 정해진 분량을 다 읽어오지 않는 친구들이 매시간 있었다. 친구들이 책을 제대로 읽어오지 않았음을 실토할 때 보이는 태도는 조금씩 달랐다. 대개는 두 반응 중 하나였다. 첫째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였다. 물론 미안해한다고 해서 다음번에 잘 읽어오는 건 아니다. 책을 읽어오지 못할만한 바쁜 일이 항상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같은 경우엔 더 바쁘다. 학교의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학교 밖의 활동을 찾아올 정도로 열의가 있는 친구들은 하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 친구들은 세미나 시간에서조차도 바빠 보인다. 세미나 중에 대화를 열심히 받아 적는다든지, 경청하고 있다는 리액션을 아주 크게 보인다든지, 무언가를 늘 하고 있다.

   반면 책을 읽어오지 않고도 무덤덤하게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있다. “저 책 못 읽었어요. 하하” 책을 읽어오지 않고 이러는 건 양반이다. 후기를 안 써도, 발제를 안 해와도, 개인 프로젝트 작업을 끝마쳐 오지 않아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눈을 끔뻑끔뻑 뜨고 있는 친구들에게 왜 못 했냐고 물어봐도 그럴싸한 이유를 들을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다음 시간에 오지 못하는데, 부끄러워서 그 이유는 알려줄 수 없다는 친구도 있다. 동희 역시 입을 잘 열지 않는 친구 중 하나였지만,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동희는 처음 <길 위>에 들어왔을 때 거의 한 시즌 내내 책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어찌나 말을 하지 않던지, 동희의 목소리를 들었던 날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입을 겨우 열게 된 동희가 한동안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음… 저는 마지막에 말할게요.”였다. 이 말은 알려주고 싶지 않다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냐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몇 분의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꺼낸, 귀중한 한마디였다. 동희에게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빚어내기 위해, 생각을 하나하나 건져 올리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매번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 생각했고, 그러다가 얼굴을 붉히며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길 위>의 멤버들은 동희를 재촉하지 않았다. 긴 시간 끝에 동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잘 모르겠어요.”여도 상관없었다. 만약 이 말이 승주의 입에서 나왔다면 <길 위>의 친구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승주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면, 그건 이 시간을 얼렁뚱땅 보내고 말겠다는 변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희에게 잘 모르겠다는 말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 동희는 매번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길 위>를 거의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는 두 시즌을 연달아 더 신청했다.

   동희가 두 번째로 함께 했던 시즌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길 위의 여정>이었다. <길 위의 여정>에서부터 동희는 (역시나 오랜 시간을 들일 끝에) 짤막하게 감상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두 마디에서 맥락을 읽어내기 위해 누군가의 말을 그토록 열심히 들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저자의 주장이 이해가 안 된다는 동희의 한 마디에 책의 내용을 끌어와 살을 붙이고, 앞의 다른 친구들의 맥락과 연결하고, 우리 세미나의 주제로 확장했다. 나는 동희에게 대단하게 말을 잘할 필요는 없다고, 열심히 했다면 단 한 마디라도 충분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우연하게도 친구들은 <길 위의 여정>에서 아주 느린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여행에서 느리게 등산을 하는 와중에도 동희의 걸음은 제일 느렸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의 여행은 느린 것의 가치를 충분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는 현재 <길 위>를 마치고 <파지스쿨>을 다니며 문탁 네트워크의 문지방이 닳도록 자주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거리를 유지하기

   동희는 서서히 문탁 네트워크에 나오는 날을 늘려갔지만 이와 정반대인 친구도 있었다. 우리가 매주 두세 번씩 만나게 되었을 때부터 연우는 갑자기 문탁 네트워크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길 위>에 온 그에게 마을 청소년 모임인 <악어떼>를 권유하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었다. 그는 별다른 일이 없어도 문탁 네트워크에 나왔고, 문탁 네트워크에 나와서도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끼니를 자주 거르는 연우는 밥을 먹으려고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세미나를 더 듣는다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를 서성이거나 한구석에 드러누워 있었다.

   연우는 비밀이 많은 친구였다. 연우에게 다가가는 건 쉽지 않았다. 잘못해서 그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지는 않을지,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문탁 네트워크의 관계가 구속으로 느껴지진 않을지 걱정됐다. 그러면서도 연우가 얼굴을 꼬박꼬박 비추는 게 신기했다. 당시 <악어떼>에서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연우 또한 공연에 참여해야 했다. 공연에서 춤을 추고 랩을 하는 것은 숫기가 없는 그에게 아주 힘든 일이 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처음 랩을 배우던 날 연우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시간에 연우는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빈지노의 <아쿠아맨> 랩을 소화해냈다. 열심히 연습해왔다고 했다.

   그때 즘부터 연우는 나의 질문에 “비밀이에요”라는 말을 덜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내 질문에 대답해주려고 애썼다. 왜 말을 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라도 말이다. 연우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함께 무언가를 해볼 수도 있겠다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지 물어보고, 내가 하는 일에 자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연우는 늘 그랬듯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때로는 당겼다가 때로는 밀었고, 언젠가는 함께 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우는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 처음에 내가 너무 귀찮게 군 건 아닌가 싶어 거리를 더 둬보기도 했고, 우리가 쉽게 멀어질 수 있는 사이인 건가 싶어 가까워지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어쩌면 연우는 자꾸 행동에 이유를 물어보는 게, 평소에 뭐 하고 지내는지에 관심을 보이는 게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함께 하자고 했던 제안이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일들이 쌓이고 쌓였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연우의 마음이 닫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문탁 네트워크에서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보이는 행동들은 그렇지 않았다. 연우는 몇 개월 동안 여전히 가끔 연락하고 보드게임을 하자고 부르면 가끔 온다.


    





조급했던 마음

   우리에겐 승주와 동희 그리고 연우 말고도 정이 든 친구들이 많다. 대안학교 출신이나 탈학교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일반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생이 되었던 민결,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인문학을 공부하며 래퍼가 되기로 한 다빈,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늘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던 지현…. 나는 <길 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놀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면서 공부와 활동을 함께 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들이 생길 줄 알았다. 내 예상과 다르게 <길 위>를 함께 했던 멤버들이 후속 세미나를 만든다거나,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친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올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문탁 네트워크 내 또래 친구들끼리 청년인문학스타업 <길드다>가 만들어진 덕분이기도 하다. 또 <길 위>를 하면서 실제로 문탁 네트워크에 청년-청소년이 늘어난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동희가 파지스쿨에 들어갔듯이, 승주는 과학세미나에 들어갔고 또 누군가는 예술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어떤 친구들은 <길 위> 밖에서도 문탁 네트워크에 계속 나타난다. 이전에 <파지스쿨>을 다녔던 다빈은 <길 위>를 계기로 다시 활발하게 문탁 네트워크에서 공부와 활동을 하게 되었다. <파지스쿨>을 다니지만 친구가 별로 없어 외로워하던 지현이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반가워했다. 매주 출몰하는 청소년-청년에 당황하던 선생님들도 이젠 아주 익숙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친구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조급했던 마음이 줄어든 덕분인 것 같다. 내가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건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만일 그렇게 따진다면 <길 위>에서 내게 생긴 친구는 명식 뿐일 것이다. 그러나 <길 위>를 진행하면서 그런 친구가 있나 없나, 몇 명이나 있나 하는 것은 보다 덜 중요해졌다. 동희가 문탁 네트워크에서 함께 지내는 일은 아주 기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연우가 더는 얼굴을 비추지 않는 일이 슬픈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여전히 여러 친구들과 함께하길 바라지만, 친구들의 선택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만나게 되는 친구들과 어떤 만남을 가질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연우와 만날 당시에 했던 거리에 대한 고민 덕분에 연우는 오랜만에 나를 만나면 수줍은 얼굴로 반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만남이나 모임만이 중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어느 날 훌쩍 문탁 네트워크를 떠났다가 또 훌쩍 돌아와 공부를 시작했듯이, 내 또래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도 하니까 말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모두가 나를 인싸라고 불렀지만 나는 자신을 아싸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나에겐 친구가 몇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말을 조금 바꿔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친구가 많은 것 같다. fin.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9. 12. 1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