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필랩 시즌3 다시 읽는 맑스, 나는 빨갱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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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필랩* 시즌3 다시 읽는 맑스, 나는 빨갱이로소이다**




*파필랩은 파지사유 철학 실험실의 줄임말이며, 파지사유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강의, 워크숍, 혹은 주제토론입니다. 문탁에서의 세미나를 통해 얻게 된 지식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고 나누는 자리입니다.


**맑스 사후 134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28년, 소련 해체 후 26년 누군가에게는 이미 너무 낡은 이름이 되어버린 맑스를 2017년 2030이 다시 든 이유는? 다시 들기엔 너무 익숙하고, 새로 들기엔 너무 당혹스런 이름 맑스! 맑스를 통해 숨 가쁘게 돌아가는 2017년 오늘을 달리 바라보는 시간



#강의개요


1강, 맑스와 노동 


 (1) 알바생 A씨의 일기 :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노동 - 이동은


 (2) 소외된 노동, 사적 소유의 고리를 넘어 - 광합성




2강, 맑스와 정치 


 (3) 정체성 정치? : 두려움에 떠는 존재가 아니라 두려운 존재 - 김고은


 (4) 지금, 촛불이라는 유령이 이 나라를 배회하고 있다 - 차명식




3강, 맑스와 사회


 (5) 삶의 문제는 어떻게 돈의 문제가 되었나? - 김지원




#후기




저는 노동의 계급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저의 협소한 상상력이 원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모든 상품세계의 상품들은 열매와의 관계로만 자신들의 가치를 표현합니다.…

열매가 일반적 상품의 등가물이 되면, 이와 동시에 열매의 현물형태는 온갖 인간노동의 눈에 보이는 화신, 즉 온갖 인간노동의 사회적 현상 형태로 여겨집니다.’ (강의안)



나의 노동을 열매와의 관계에 따라 계급 매기고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드러내 보여줄 것이라 오랫동안 믿고 있던 탓에, 

화폐적인 관계 외의 것으로 나의 가치를 표현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너무나 막막하게 느껴질 때 특히 그렇습니다.


강의 초반에 지원샘이 ‘맑스와 종교’를 얘기하겠다고 하셨던 말이 기억나네요.

나를 이루고 있는 이 ‘믿음’들이 물건 간의 교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틀’이 나의 관계능력을 기형적이고 무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가 어떤 종교에 몸을 담그고 있는지 보는 일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_백수다 호호미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3. 11.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