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김고은, 김지원, 이동은의 <다른 이십대의 탄생>

지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수다>

글 : 지원 나는 왜 하필 많고 많은 일 중 목수 일을 하게 되었나?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 목공소가 문탁 바로 옆에 있었고, 내가 전역할 당시 마침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남들이 알바 하듯,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용돈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술도 마시고, 친구들도 만나야했다. 그럼 왜 5년씩이나 목공일을 했나?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누구나 그렇듯,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에 친구들이 내가 목수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지었던 표정은 한마디로 ‘경외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환상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혹은 우쭐함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해) 목수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친구들에게 설파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설파했던 꿈의 직업과 달리 나에게도 월요병은 어김..

동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글 : 동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직도 나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렵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이것저것’ 하며 ‘그럭저럭’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를 명확하게 설명해줄 직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는 일 없이 놀고만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백수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설명하려면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나름의 굵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름보일러의 충격 나는 중학교를 4년 동안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1년 동안 대안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대안학교는 지리산 산내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아침마다 걷던 등굣길은 아파트에서 산자락으로 변했고, 수업은 골라서 들었기 때문에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엔 처마 밑에서 낮잠..

고은, <말을 찾아 삼만리>

글 : 고은 일반중학교에서 대안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날 바라보던 성택이의 표정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런저런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렸는데, ‘일찐’이라 불렸던 성택이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유일하게 3년 간 같은 반을 하며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자랐던 사이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성택이는 나에게 대안학교에 가냐고 점잖게 물었다. 그러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이야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만 당시에 대안학교는 문제아들이 가는 곳이란 인식이 팽배했다. ‘나도 안가는 대안학교를 네가…? 왜…?’ 내가 가는 대안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았던 몇몇 선생님들도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기주장이라곤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범생이 왜 대안학교에…?’ 중학교의 첫 국어시간..

지원, <수단이 되는 삶, '왜?'라고 질문하기>

글 : 지원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5년 간 다니던 목공소를 그만두고, 현재 준 백수(반쯤은 프리랜서)가 되었다. 내 삶은 불확실성 속에 놓여있다. 나는 기껏 모아놓은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퇴사 직전 유럽여행에 모두 썼고, 부양해야할 가족은 없지만(어쩌다 보니 함께 살게 된 개 한 마리가 있긴 하다.) 내 가족도 나를 부양해줄 수 없다. 말인 즉, 매달 월세를 내야하고, 생활을 위한 벌이를 해야 한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간단하다. 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장과 사지 멀쩡한 몸, 그리고 5년 간 익힌 목공 기술이다. 누군가는 내가 가진 것을 듣는다면 충분하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