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인문학] '지금여기힙합' 발제 (2) - 힙합과 여성혐오, 힙합과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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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현의 [힙합인문학]에서는 [랩인문학-장르 너머의 힙합] 수업의 강의안을 업로드 합니다. 힙합과 인문학을 엮어 다양한 질문들과 답을 모색해봅니다. 

 

 

힙합과 여성혐오, 힙합과 페미니즘

 

힙합과 여성혐오는 땔 레야 땔 수 없는 사이다. 힙합의 폭력적인 성향, 소비주의적인 성향과 더불어 여성을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성향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본토의 성향을 가져온 한국힙합에서도 여성혐오 문제로 큰 이슈가 되었는데, 재밌게도 가장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힙합이라는 타이틀과 대립구도를 가지고 있는 아이돌 위너의 래퍼 송민호였다. 그가 쇼미더머니4에서 사용한 가사 중에 내 앞에선 산부인과(에서)처럼 다 벌려라는 구절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산부인과협회는 즉각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방통위는 쇼미더머니에 최고 징계에 해당하는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송민호가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 힙합이 본격적으로 여성혐오와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송민호라는 개인 뿐만 아니라 힙합이라는 타이틀이 큰 질타를 받자 힙합팬들이 보인 반응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국힙합은 이것보다 수위가 높은 게 많은데 왜 한국래퍼한테만 그러냐는 것. 훨씬 수위가 높은 가사를 쓰는 에미넴의 내한소식은 그렇게 반겼으면서, 송민호한테는 왜 이리 엄격하게 구냐는 주장이었다.

두 번째는 미국의 힙합 음악가들이 보인 반응과 유사했다. “힙합이 비하하는 여성은 일반(모든) 여성이 아니라 헤픈 여성, 돈을 노리고 접근 하는 여성이다.” 라는 것. 쉽게 말해 ‘Bitch’는 실존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힙합은 특정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문제도, 성차별도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런 여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성별의 속성이나 정체성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특정한 인물이라고 하기엔 섬세함 없이 쓰여진 가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 한국힙합에서는 주로 얍삽한 남성래퍼들을 계집애 같다라는 의미로 ‘Bitch’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밖에도 큰 의미 없이 사운드로서만 ‘Bitch’를 사용하는데, 결국 비하하는 단어로밖에 쓰지 않는다. ‘Bitches’‘Hoes’같은 표현들은 여성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구조를 가리킬 뿐 아니라, 많은 흑인 여성이 사실상 성 상품화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할 수밖에 없던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품성 탓으로 돌리게 한다.

 

카디비

 

한편 이에 대해 니키 미나즈카디비같은 래퍼들은, 미국의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는 강한 여성의 의미로 ‘Bitch’를 재점유한다. 못됐지만, 멋진 사람을 뜻하는 ‘Bad ass’라는 표현을 변형하여 ‘Bad bitches’같은 표현들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런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왔고, 한국에도 제시’, ‘CL’ 등이 이런 이미지를 표방한다.

그러나 니키미나즈와 카디비의 행보가 정말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녀들이 제시하는 여성상은 수동적이었던 과거 여성상의 반전이다. 그녀들은 능동적으로 남자를 탐하고, 좋은 몸매와 랩 실력을 비롯한 그녀들의 능력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높은 계급(성공)을 당당하게 차지한다는 맥락이다. 이런 맥락이 모든 페미니즘과 동일시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는 주장과, 네 번째는 여성혐오적인 가사는 무조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전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이 주장들은 얼핏 보면 간단한 문제 같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측의 주장은 대부분 특정 단어만이 살릴 수 있는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 욕설만이 줄 수 있는 타격감과 그 의미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는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주장 같은 경우는 성차별이 전부 힙합의 책임은 될 수 없지만, 이 음악장르가 여성 혐오적인 가사를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 및 인정하고, 의식해야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힙합 대부 제이지가 과거에 썼던 가사들에 대해 사과 하고, 여성 래퍼의 존재감이 커지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도 힙합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변화에 주목해야한다. “원래 힙합이 그런 것이다.”라거나, “힙합을 알지도 못하면서같은 말로 무시하고, 페미니즘을 배척한다면, 힙합이라는 문화의 발전 자체가 없을 것이다.

 

-여자 치고 이정도면...

래퍼이기 이전에 힙합팬인 나는 항상 신선한 아티스트들을 찾아다닌다. 그 중 랩/힙합 장르에서 매우 신선한 래퍼들을 만나면 90프로 이상이 다 남성이다. 그리고 언프리티 랩스타나, 요즘 뜬다하는 여성래퍼들을 들으면,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왜 그럴까? 왜 여성래퍼들은 구린가? 왜 신선한 남성래퍼보다 여성래퍼가 더 드물까?

 

-왜 블랙넛은 (주로 10대 남성들에게)인기가 많을까? / 차붐

블랙넛의 팬층은 99퍼센트가 남성이고, 그 중에도 10대 남성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가사 때문이다. 그가 블랙넛으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MC 기형아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그의 가사는 모쏠아다인 자신을 자학하고, 루저로서 살아가는 삶을 고스란히 비춰준다. 외모, 학력, 출신, 어느 것 하나 잘난 것이 없고 무시 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력한 자신의 삶을 담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요즘 청년들의 일반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무력한 자신을 인정하고, 그렇기에 약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며 각종 비하와 혐오표현들을 웃음코드로 소비한다. 이 경향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커뮤니티가 일베이며, 강도에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다양한 커뮤니티 속에서 이러한 경향이 남아있다.

같은 메커니즘의 가사를 보여주지만 매니아 층에서 열렬한 지지와 힙합씬의 인정을 받는 래퍼도 있다. 바로 차붐이다. 그는 블랙넛과 같이 자신의 루저로 살아가는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각종 혐오표현(창녀, 짱깨 등)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차붐의 가사에선 무력함보다는 당당함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쌈마이이지만, 그 멋에 살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태생과 환경이 자신만의 오리지널’(차붐의 정규 1집의 제목이기도 하다.)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표현 자체에 대해서는 차붐도 비판을 피해갈 순 없겠지만, 그가 보여주는 일종의 긍정당당함은 힙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붐의 태도가 멋있다고 해도 그들의 리얼함을 드러내는 방식이 10대 청소년이나 여성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자. 게다가 힙합은 더 이상 음지의 마이너 문화가 아니다. 빌보드와 한국 대중음악 차트에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중음악이다. 우리가 힙합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래퍼라면)힙합을 어떻게 실천해야하는지를 고민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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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20. 9. 28. 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