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RC - <99%를 위한 페미니즘> 첫번째 모임 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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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날짜 : 7/28

글쓴이 : 제경

 

99%를 위한 페미니즘 첫번째 모임 후기

 

첫번째 모임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첫 번째 모임을 마치고 나서는 우주소년에서 다음 주에 읽어야할 책도 샀는데요. 길드다에서의 첫 모임과 우주소년을 다녀와 집으로 가는 길에 든든한 밥을 한 끼 먹은 것처럼 힘이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따뜻한 공간에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나눈 덕분이지만, 무엇보다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책모임이나 이런 인문학 활동을 하기 위해서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뿐히 감내하면서 서울을 오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친구가 저희 동네 근처에서 세미나를 하러 온다길래 그런 공간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꽤나 배신감(?)아닌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는데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거죠? 하며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친구에게 고맙고 행복한 요즘입니다. 

 

 

 

 

첫번째 모임은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의 1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자는 1부에서 충돌하고 교차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경험을 세세하게 벗겨내어 들려줍니다. 저자의 다이크 정체성, 계급적 위치, 시골 출신 백인, 선천적 장애와 같은 '뿌리가 만든 미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세상이 비추어주는 자신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에서 이상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인 저도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뿌리는 무엇인가? 나의 뿌리도 미궁처럼 얽혀있는가? 더 나아가서는 내가 나의 존재를 이름 짓고, 그 복잡함을 언어화한 적이 있던가? 나는 어떤 충돌하고 교차하는 관계 속의 존재인가?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냈듯이, 저도 제 뿌리와 복잡모호한 관계 속에서의 저를 발견하고 저의 이야기를 잘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집과 몸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집은 우리를 품어주고 지탱해주는 모든 것을 뜻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집으로부터 도망쳐왔고, 동시에 집을 갈망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결국 '집'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진실한 다중쟁점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집이 '몸'이 되기 위해서 이해해해야 하는 것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째, 몸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수많은 몸들이 내 몸을 따라다니고 강조하고 내 몸에 힘을 보탠다는 것. 둘째, 장소와 공동체 그리고 문화가 우리의 뼛속 깊이 파고 들어 있다는 것. 셋째, 언어 역시 피부 아래에 살아있다는 것. 넷째, 몸들이 도둑맞고 거짓과 독을 주입받고, 우리로부터 억지로 떼어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도둑맞은 몸이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과 몸의 관점에서 저자는 퀴어, 망명, 계급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특히 퀴어로서 존재하기 위해 집으로부터 떠나야만 하는 상실감에 대해 괴로워합니다. " 이 모든 것이 내겐 생명줄과 같다. 그러나 나는 이를 위해 이러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싫고, 일종의 망명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싫다."  우리는 이러한 상실감에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심 제가 속으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상실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습게도, 저는 그러한 상실을 생생하게 느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죠. 한편으로는 내가 내 뿌리와 이름들을, 그 경계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깊은 소속감 안에서의 이상함이나, 어느순간에는 뛰쳐나올 수 밖에 없는 괴로움이나, 상실에 대해 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튼 저는 제 뿌리의 미궁들을 탐색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벌목업이 주산업인 시골 출신으로서 환경문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미봉책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진부한 방식이 아니라, 아주 진득한 방식으로 환경문제에 얽혀있는 복잡한 입장과 관계를 바탕으로 파헤칩니다. 환경운동가들에게는 환경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게 주의를 돌리라고 말하며, 노동자들과 연대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주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지구 및 그 자원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결국에는 미국의 신념과 정책,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변화에 의해 뿌리까지 흔들릴 마을과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잡한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이 분명한 만큼 옳은 일인 것도 명백하기에 저자의 호소가 와닿았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삶의 방식과 지구에 대한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수불가결한데, 이를 설득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 마음가짐을 정돈하게 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감상과 메모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두런두런 나누고, 고은의 발제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고은이 준비한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페미니즘에 대해 각자 자신이 느끼고 있던 부담이나, 우려, 긴장감이나 실망, 난처함, 분노, 우울함, 무력함을 꺼내어 볼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짐들을 꺼내놓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에 이런 자리가 간절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었을 즈음부터 왠지 말끝이 흐리게 되거나 의식적으로 주제를 회피하게 되는 순간들이 꽤 쌓였던 터라 이런 대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이전에는 관심이 없었다가 갈등과 혐오가 하나둘씩 눈에 보이자 그제서야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이야기를 나눌 좋은 공간이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서 온라인 속분노에 알게 모르게 기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을 파고들 새 없이 덮쳐오는 대로 파도에 휩쓸리다 보니 배제하고 혐오하는 페미니즘을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모임이 그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을 어릴 때부터 접하고 배웠던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느꼈던 감정, 혼란스럽고 아직은 잘 모르겠는 감정,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들을 들으면서 같이 어떤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시간이 훌쩍 흘렀고, 어쩐지 든든한 마음으로 모임을 마쳤답니다. 두번째 모임에서 99%를 위한 페미니즘 선언을 읽고 나눌 이야기들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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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20. 7. 30.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