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페미니즘] 프로젝트 <나는 오늘도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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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페미니즘 개인 프로젝트


최현민 작

소설 <나는 오늘도 꿈을 꾸었다>











작품소개



우리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는 기준은 세 가지 입니다.


사회적 성(gender), 생물학적 성(sex), 성적 지향(sexuality). 세 가지 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모습(sex)은 남자이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gender), 

여성으로서 남성을 혹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축이 세 개로 늘어나면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구분이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경계에 따른 성정체성 영역이 이렇게 복잡하다면, 

어쩌면 이 경계들이 사실은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실재하지 않는게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상상에서 소설은 출발했습니다.











작품 일부 발췌




방금 고른 옷들은 1년 전만 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옷들이다. 아니 어쩌면 반년 전에도 그랬다. 어려서부터 머리카락이 여자처럼 길었던 나는 여성스럽게 꾸미는 걸 좋아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다녔고, 주변의 여학생들이 입는 옷들을 찾아 입었다. 통이 넓은 바지보다는 딱 달라붙는 스키니를, 셔츠보다는 야윈 상체를 드러내는 가디건을 입고, 가슴 팍 위에는 아기자기한 목걸이를 둘렀다. 몸이 내 성별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그 때는 괜찮았다. 어깨가 벌어지고 다리가 근육으로 다져지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작년 11월 즈음. 나는 방 안에 거울을 앞에 두고 서 있었다. 오른 쪽 볼 위에 여드름 하나가 도드라져 보이는, 거울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을 심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결연한 다짐이라도 마친 듯 나는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풀어 목에서 떼어 냈다. 반짝거리는 ㄴ자 모양의 작은 장식과 큐브 모양의 장신구가 달린, 매일 같이 내 목을 두르고 있던 그 목걸이를. 그것을 가지런히 접어 보관함에 –다시는 열리지 않을- 넣어뒀다. 
  이내 내 손은 회색의 얇은 가디건 단추를 풀었다. 뒤집어 벗어놓은 스키니 바지를 다시 뒤집어 개어 옷더미에 얹어놓았다. 그동안 내가 입었던 옷들이 한 곳에 차곡차곡 모아져 있다. 옷장 밑의 수랍장을 열어 그 안을 옷들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다시는 손대지 않을 마음으로 수랍장 문을 밀어 넣었다. 
나는 다시 떠올렸다. 그 날 여자 친구가 순화된 말로 조심스럽게 내게 했던 말을.
포기할 수 없는 네 스타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네가 그렇게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그녀는 의도적으로 화두를 돌린다. 마침 내 왼손 약지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발견하고는 묻는다.
  근데 너 여자친구 있지 않아?
  응 있어. 왜?  그럼 여자 친구가 이렇게 둘이 만나는 거 불편해하지 않냐?
  흠...
  나는 답을 이어가지 못한다. 대답하기가 껄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녀가 그 질문을 입에서 꺼낸 순간, 내 몸에 소름이 듣게 할 만큼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강렬한 그 느낌과 함께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이 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에... 내 꿈속에서.



그녀와 일 년을 같이 살았지만, 그녀가 다자연애를 한다는 것은 두 달 전에야 알았다. 아마 그 사건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까지도 몰랐을거야. 그 때도 딱히 궁금해서 알게 된 건 아니였으니까.




  내가 다자연애를 한 적이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래. 그녀는 느닷없이 자기고백처럼 말한다. 나는 약간 당황하고, 그녀의 말이 소심한 변명인지 담담한 고백인지 짚어본다. 그런데 애인이랑 무슨 일 있었어? 좀 화난 것 같더라. 라는 말 뒤에 그런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내게는 몹시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졌으니까. 그 말만 듣고 다시 방 안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게 뭐했던 나는 한 번 더 묻는다. 예전에 다자연애자와 짧게 만났던 경험에 비추어서. 
  그럼 지금은 그 사람만 만나는 거야?
  내 입에서 나온 말이 흔들고 간 공간을 다시 정적이 채운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녀는 지금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것을 애인에게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확실히 익숙하긴 하다. 내가 본 사람들 중 열에 셋은 다자연애자였으니까.




힘없이 열리는 문을 열고 나는 안으로 들어간다. 차갑게 마른 살갗으로 집 안의 습한 온기를 느끼고서야 추위 속에 떨고 있었다는 걸 안 나는 그녀에게 문 좀 빨리 열어줬어야지 하고 괜히 투덜댄다. 샤워하고 있어서 그랬어, 음악 크게 틀어놓으면서 씻는 거 오빠도 알잖아. 하고 그녀는 아랫도리로 짧은 수건만을 걸친 채 말한다. 봉긋한 가슴에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신발을 허둥대며 벗고 안으로 들어가려 고개를 들었을 때야 알았다.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3. 5.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