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상반기 공산품, 적합한 물건들 ADEQUATE THINGS
<적합한 물건들 ADEQUATE THINGS> / 김지원
“인간의 신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극받도록 하는 것, 또는 인간 신체를 외적인 물체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극하는데 적합하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유익하다. 그것은 신체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극되고 동시에 다른 물체에게 자극을 주는데 적합하면 할수록 그만큼 유익하다. 반대로 신체가 그러한 적성을 감소시키는 것은 유해하다.”
―스피노자 『에티카』 4부 정리38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나무도 심었습니다. 이 집은 이백 년은 갈 테지…
이삼백 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이런 감각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 싶군요.
눈앞의 것만, 조금이라도 빨리, 이렇게 되어버렸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숲을 소중하게’,
‘자연을 귀중하게’라며 자연 보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나무는 본래 알뜰하게 사용하고, 바로바로 심기만 하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당연한 생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 『나무에게 배운다』
이삼백년은 나를 넘어선 시간입니다. 나를 넘어선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후대를, 나의 생의 시간을 넘어서는 결과들을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호류지가의 장인인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그의 제자에게 이런 감각을 가르칩니다. 논리적으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베어낸 숫자만큼 나무를 심습니다. 그리고 베어낸 나무로, 이제 막 심은 나무가 충분히 성장할 만큼의 시간 동안 사용될 집을 짓습니다. 말은 쉽지만 많은 공을, 그야말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오래 살 가구를 만드는 일은 충분한 경험과 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둘째는 나의 옆 사람, 나와 다른 사람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타자를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산업화가 몰고 온 발전, 상품사회는 ‘우리’를 ‘나’로 분리했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 식의 정서가 자리 잡기까지는 상품사회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빠른 것’에 대한 미덕이 생겨나지 않았을 테지요. 그러나 타자를 고려한다는 것은 거꾸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경계를 무너트림으로써, ‘이익’이 아닌, ‘적합함’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넘어서는 감각입니다. 지구온난화, 혹은 불치병이라는 오래된 이슈에 우리가 냉소적으로,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요. 뻔하고, 실감나지 않고, 늘 똑같은 결론에 이르고, 과학이 알아서 해줄 것 같고…. 그러나 알아서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현상들과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연결시킬 줄 아는 감각을 만들어내는 수밖에요. 그런 감각의 연장에서,
‘적합한 물건들’은 ‘소비되는 물건들’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제작자는 재고를 쌓아두지 않으며, 제작 과정에서 화폐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정성을 약속합니다. 구매자는 꼭 필요할 때에 구매해, 적절히 사용할 것을 약속합니다.
▲적합한 물건들
1. 모든 가구는 ‘말레이시아산 합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나무와 노동자들의 손, 그리고 집성 기계를 거쳐 생산된 b/b급 합판입니다. 합판은 수축/ 팽창하는 나무에 비해 변형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결 반대 방향으로 수축/ 팽창하는 나무의 결을 교차시키고, 본드로 고정함으로써 변형을 억제합니다. 측면의 줄무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모든 가구는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컴퓨터 수치제어)조각기를 이용해 재단되었습니다. 합판의 결합엔 나사나 못, 핀 등의 철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수치제어 가공은 도면을 그리고, 컴퓨터에 입력하면 드릴 날이 상하좌우전후로 움직이며 모양을 만듭니다. 인간은 도면을 그리고, 입력하고, 드릴 날을 갈아주고, 가끔 청소만 해주면 됩니다. 내면 가공의 모서리를 살펴보면 둥글게 튀어나온 부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드릴 날이 둥글기 때문입니다.
3. 모든 가구는 독일산 친환경 수성 바니시로 마감 되었습니다. 독일은 친환경 페인트의 선두주자이며, 대한민국의 페인트 환경 유해성 검사 기준에 비해 열 배가량 높습니다. 가격은 약 두 배-세 배 높습니다. 대신, 마르는 시간이 약 두 배가량 느립니다.
▲CNC가공을 위한 도면 작업
①STOOL OR SIDE TABLE
*‘의자 아니면 협탁’을 4개 만드는 데에 1장의 합판이 사용됩니다.
낭비가 없도록 계산되었습니다. 따라서 4명의 주문이 모이면, 1회 생산-판매합니다.
*‘의자 아니면 협탁’은 한 가지 이상의 용도로 사용되며,
이름과 상관없이 각자의 필요에 맞게―자유롭게―사용될 수 있습니다.
*길드다 사무실을 위한 디자인이며, 부드러운 원형을 사용하면서도 공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수납 및 벽 붙이가 가능한 하부 및 상판 모양을 고안했습니다.
▲의자 아니면 협탁
②PARASITIC TABLE
*‘의존하는 탁자’를 2개 만드는 데에 1장의 합판이 사용됩니다.
*‘의존하는 탁자’는 책이나 문서 등의 보관, 보조 탁자,
혹은 파티션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희경님의 필요가 디자인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국내 테이블 외경 규격이―매우 상이한 내경에 비해―동일하므로 기존 테이블의 상판을 덮는 접이식 상판이 적절하다 판단했습니다. 공간의 효율성과―‘보조’하는 테이블이라는―용도적 특성을 고려해 안정적인 외다리와 의존적인 구조로 디자인 했습니다.
▲의존하는 탁자
③TABLE FOR SMALL HOME
*‘작은 집을 위한 탁자’를 1개 만드는 데에 1장의 합판이 사용됩니다.
*‘작은 집을 위한 테이블’은 잦은 이사,
특히 작은 집으로의 잦은 이사를 고려하여 설계되었습니다.
*합판의 소재적 특성―미미한 수축팽창―과 전통 결구법인 ‘방두산지’를 결합해,
보다 튼튼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테이블을 디자인했습니다.
▲작은 집을 위한 탁자
'공산품 > 2018 공산품 : 생산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 뭐하지? (2) | 2018.12.23 |
---|---|
Do Nothing Club (0) | 2018.12.03 |
Empty Hearts Club (0) | 2018.12.03 |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임 작업과정 (0) | 2018.12.03 |
저의 첫 ep앨범의 출시됩니다. (0) | 2018.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