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를 읽는다] 아홉 번째 시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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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대 세미나, 이번 시간에는 아이리스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의 2장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과 ‘반란과 복지 자본주의 사회’를 읽었습니다.


  1.

  우선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부터 말해봅시다. 영에게 억압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주장하는 새로운 방식의 정의, 기존의 분배 중심 정의가 아닌 이른바 ‘역량 증진적 정의’에 있어 가장 중대한 부不정의가 억압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억압과 지배가 역량을 박탈하는 제약 형식”) 이에 영은 자신이 억압이라는 개념을 어떠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가와 현실에서 억압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가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본디 억압이랑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냉전 시대의 공산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였으나, 60년대 신좌파 운동 이후로는 “좋은 의도를 가진 자유사회에서 매일매일 행해지는 실천들 때문에 사회 구성원 중 일부가 겪는 차별과 부정의”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존 맑시즘이 모든 종류의 억압을 계급 문제로 환원시키는 데에 대한 반동이기도 한데, 사회문제에 있어 보다 다양한 정체성과 특이성을 포착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개념이기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영의 문제제기는 개인들이 속한 사회 집단에 대한 통찰 역시 중요시합니다.

  이러한 억압은 대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1) 착취 : 착취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나, 영은 분배 모델에 입각한 경제적 착취를 넘어 ‘불평등 분배를 창출하게끔 한 집단으로부터 다른 집단으로 에너지가 이전되는 사회과정’으로 그 개념을 넓혀야 함을 주장합니다. 가령 미국사회에서 라틴이나 아시안들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직종에 종사하게 되는 과정 역시도 착취라는 것입니다.


   2) 주변화 : 어떤 이들을 노동 시스템이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할 이들로 규정하는 것. 결혼과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연령대의 여성들의 채용을 기피하는 회사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 무력함 : 사회의 의사결정에 있어 간접적 의미에서의 권력이나 권한조차 갖지 못한 자들. 일할 때 자율성이 거의 없고 창의적 독자적 판단을 낼리지 못하며 기술적 전문성과 권위도 없고 자신을 표현할 수도 존중받지도 못한다.


  4) 문화제국주의 : 지배집단의 경험과 문화를 보편화하고 유일한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

  

  5) 폭력.


  세미나 시간에,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억압의 케이스들을 우리 현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카풀앱에 맞선 택시기사들의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싸늘한가”, “과연 택시기사들은 어떤 억압을 당하고 있는가”, “택시기사들은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하는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결론은


   1) 택시기사들은 ‘무력함’ 상태에 처해있고, 아마 국가를 상대로 싸우겠지만 사실 여기에 있어서도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분배 정책적인 차원에 머무를 것이다.

  2) 결국 정부는 이 문제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을 제공하진 못할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항상 분배 정의의 방식으로 대처하여 이러한 반란들을 자기 내부로 재통합해왔으나, 기술발전이라는 변수와 함께 시작되는 이러한 형태의 문제들이 늘어날수록 더 이상 분배 정의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반란들이 많아질 것이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2.

  한편 ‘반란과 복지 자본주의 사회’는, 복지자본주의의 정부 관료제 시스템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존속에 기여하면서 모든 문제들을 비정치화 시키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에 따르면 복지자본주의 (자본주의 체제이면서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는 크게 다음과 같은 원리를 가집니다.


  1) 공동복지를 최대화하기 위해 경제활동은 사회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규제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생계와 복지를 위해)

  2) 시민들은 기본적 필요를 사회가 충족하도록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사적 메커니즘이 그렇게 해주지 못할 경우 국가는 이 기본적 필요의 충족을 지향하는 정책들을 제도화할 의무가 있다.

  3) 형식적 평등과 객관적 절차(권력을 지닌 일부 개인들이 원하는 대로 작동하는 자의적 권위 형태와 강압적인 형동 유인 형태와 대치되는)가 존재한다.


  이러한 원리들은 소비자들과 숙련 노동자들을 생산하는 동시에 정부가 주도하는 시장 영역을 창출해내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존속에 기여합니다. 물론 이 원리들은 가혹한 신자유주의 체제에 비하면 훨씬 ‘인간적이나’ 다른 한편으로 사회의 모든 문제와 구성원들을 비정치화시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영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점차 사적인 경제활동들이 공공정책의 관할로 들어옴으로써 동시에 공적인 것들이 점점 더 비정치화되는 측면, 즉 사회적 갈등과 논의는 분배 쟁점에 국한되고 생산조직 및 목표, 의사 결정의 지위 및 절차 같은 근본적인 쟁점들과 기타 제도적 쟁점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전혀 이뤄지지 않게 되는 측면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167p) 가장 근본적인 영역, 예를 들어 국가 존재의 기본적인 목적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시민들은 고객-소비자, 다시 말해 철저하게 사적 존재로 규정되고, 사회와 정치란 다양한 사적 이익집단들이 제한된 자원의 획득을 위해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 경쟁하는 장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이익집단 다원주의’의 갈등 해결 과정에서는 정의나 옳음에 대한 규범적 주장과 이기적 주장이 전혀 구분되지 않고, 옳음이나 정의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말하는 이들로 여겨지며, 이것은 곧 정치적 냉소로 이어진다. 심지어는 민권운동과 평등권 운동 등을 수행하는 본인들조차도 스스로를 이익집단의 하나로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공적인 것의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 개념 자체를 소멸시킨다. 소위 사회적 문제라 하는 것은 사회의 공통의 문제가 아닌 각 이익집단의 문제가 되고, 정책 역시 시민들을 하나의 공적인 집단으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익집단의 구성원으로 포착한다.”


  60년대 이후의 신좌파운동들은 이러한 복지자본주의 사회의 경향에 대한 반란으로서, 그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1) 의사결정 구조와 자신들의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의 권리에 도전하는 운동들. 냉전 시대의 반핵, 반전 운동들이 대표적이다.

  2) 자주적 서비스를 조직하는 운동들. 여성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취약 계층들이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자주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3) 문화 정체성의 운동들. 문화의 정치화, 즉 언어, 몸짓, 행동의 형식들과 상호작용의 관행 등이 사회적 지배 및 집단 억압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질문한다. 히피 문화, 식탁의 환경운동, 다양한 소수자 운동.


  정부는 이러한 반란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다원주의 체제로 재통합하려 시도해왔고, 그것은 ‘제도적 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분배 해법의 방식’으로 틀어놓는 식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대부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반란이 일어나고, 흡수되고, 일어나고, 흡수되는 변증법의 과정이 반복되어 온 것입니다.

  영은 이 연쇄를 끊기 위해 분배 정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정의, 자신의 정의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환경 속에서 만족감을 주는 기술들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경청할 수 있는 맥락 속에서 사회적 삶에 관한 자신들의 느낌과 체험과 관점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제도화된 조건(206p)) 또한 이러한 정의관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민주적 참여가 필수적이며,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특정 강자들에게 기울어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충분히 신경 쓸 것을 주문합니다.

  세미나 시간에, 우리는 복지국가의 정부 관료제가 사회를 비정치화시키는 과정과, 반란들을 다시 재통합시키는 과정에 대한 영의 묘사가 굉장히 탁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나 몇 해 전부터 계속해서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정말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한편으로는, 이미 서구 국가들이 복지국가의 노선을 탔다가 지금 영이 묘사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겪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뒤늦게 복지국가 노선을 지향하는 한국 역시 결국 같은 한계들에 부딪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책을 현 정부의 민정수석인 조국 교수가 번역했다는 사실도 대단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3.

  『차이의 정치와 정의』를 계속해서 읽어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영이 묘사하는 과거 미국사회의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정말 닮아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분배 정의에 입각한 복지국가 노선을 지향하는 가운데, 그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과 억압의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어져나가는 시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으로서의 ‘제도의 힘’을 강조하는 영은 결론부에서 과연 어떠한 대답에 이를지, 그것이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다음 주에는 책의 4장과 5장을 계속해서 읽어나갑니다. 이번주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11. 1.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