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쟁 : 1968 | 2019 >

 

두 전쟁 : 1964 | 2019

 

차명식

 

 

  여기 두 개의 전쟁이 있다.

 

  한 전쟁은 20세기 중반, 세계를 양분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질서 속에서 동남아시아의 한 분단국가를 무대로 치러졌다. 도시와 정글 속에서 세계 최고의 군대라는 미군과 베트남의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집요한 전투를 벌였다. 전쟁은 10년 가까이 이어졌고, 서로 헤아릴 수 없는 희생자를 낸 끝에 미군이 전쟁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다른 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1세기,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견된 한 바이러스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세계 전체를 휩쓸었다. 국가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류 전체가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였으며 여전히 벌이고 있다. 이미 희생자는 40만을 넘겼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 전쟁의 끝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전쟁은 언제나 그 시대의 일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시대의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이 두 전쟁 사이에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며 때문에 제각기 드러낸 시대의 모습도 당대에 미친 영향도 다르다. 만일 우리에게 제한 없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그 수도 없는 차이들에 대하여 밤새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네 가지 공통된 키워드를 가지고 그 차이들을 정교하게 엮어낼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20세기 중반과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견주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이 향하는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 그 네 가지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뉴미디어. 이미지. 진실, 그리고 공론장.

 

 

 

  베트남 - 1960년대의 미디어, 이미지, 진실, 공론장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미군이 투입된 것은 1964년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미국의 괴뢰국가였던 남베트남을 지원하여 공산국가 북베트남과 민병대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제압, 동남아의 공산화를 저지하면서 일대의 천연자원을 미국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었다. 사실 미군의 개입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미국 내부에서는 이 전쟁이 금방 끝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만큼 베트남과 미국의 국력 사이에는 압도적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글에서의 전투는 이제껏 미군이 경험해본 적 없는 전투였고 통일을 향한 베트콩들의 집념은 강력했다. 결국 5년이 지나 1968년이 되었음에도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 즈음에는 몇 년 전에 불과 수백 명에 지나지 않았던 반전 운동의 규모도 점차 커져가는 중이었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여론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1968년 3월, 아시아의 명절 ‘구정’. 이 전쟁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구정 공세’였다.

 

  구정 공세는 명절로 분위기가 풀어져 있는 틈을 타 베트콩들이 남베트남의 41개 도시에 기습을 가한 사건이었다. 사실 공세 자체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남베트남 일대의 베트콩 조직을 거의 궤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격당하는 도시를, 죽어가는 미군들을, 그 모든 장면을 이 시대의 뉴미디어 - 컬러 TV 방송이 남김없이 찍어 미국 전역에 송출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전쟁은 곧 끝난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있던 미국인들은 공격당하는 미군과 도시들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비로소, ‘진실’을 - 이 전쟁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Tet Offensive 1968, US Embassy & Saigon fighting 1968년 당시 구정 공세를 보도한 실제 뉴스 장면들 (*1)

 

 

  1960년대는 텔레비전의 시대였다. 브라운관 TV는 20세기 초에 이미 발명됐지만, 2차 세계 대전 탓에 널리 퍼지지 못하다가 50년대 컬러 TV의 발명과 함께 전 세계로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색감, 움직임, 음향……이 새로운 매체는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현실감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구정 공세에서 그 현실감을 전쟁의 참상을 미국인들에게, 아니, 미국 뿐 아니라 텔레비전을 구매할 여유를 가진 세계 곳곳에게 여과 없이 전달했다. 그것은 ‘연출되지 않은 전쟁의 이미지’였다.

 

  19세기 말부터 수행된 앞선 거대한 전쟁들 역시도 사진을 통해 이미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이미지들은 대개 연출된 이미지들이었다. 영광스런 아군의 승리, 적들의 잔학무도함, 무고한 희생자들, 종전의 짜릿함.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컬러 TV의 등장은 그러한 연출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TV의 등장은 이제 TV와 경쟁하게 된 사진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 그들 또한 연출된 이미지를 저버렸다.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목숨을 걸고 군대와 함께 정글을 누비며 연출되지 않은 전쟁의 순간들을 찍어 본국으로 보냈다. 이 이미지들은 전쟁터로부터 떨어져 있던 서방세계의 대중을 융단 폭격했다. 그들에게 그 연출되지 않은 이미지들은 ‘진실’, 부도덕한 미국 정부가 감추고 있던 그런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들 (*3)

 

 

 

  상황은 명백해보였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징병당해 베트남으로 끌려가고 있었고, 그것을 미국인들이 감내했던 이유는 베트남에서의 전쟁 또한 나치와 싸운 2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덮친 이미지들은 그 전쟁에서 죽어나가는 양민들, 특히 여자와 아이들, 또한 비참하게 죽어가는 미군병사들, 참상에 넋을 놓아버린 병사들, 비열한 살인자의 얼굴을 한 병사들을 - 그 ‘병사’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던 이웃의 젊은이들이었다 - 보여주고 있었다. 때맞춰 사실 이 전쟁의 중요한 목표 중 한 가지가 베트남의 주석, 석유, 고무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기밀서류까지 유출되기 시작했다. 또 부유한 백인 집안의 자제들은 징병되지 않고, 유색인종과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부터 징병되고 있는 증언이 군인들에 의해 빗발쳤다. 정부가 그들을 속이고 있었다. ‘진실’. 감추어졌던 그것은 이제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이미지.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미국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서. 그들은 거리를 점거하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토론하고, 싸웠다. 베트남이라는 이름이 국적과 인종과 계급과 다른 숱한 것들을 초월해 그들을 하나로 연대하게 했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보편의 대의였으며, 오직 수단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신체는 그 거리에 하나 되어 있었고, 그들의 낭만적인 공론장도 그 거리에 있었다.

 

  “미국 내에서는 먼저 대학생이 자국 정부의 베트남 개입정책 강화에 반기를 들었다. 학생들은 베트남에 전투병으로 징집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실제로 1966년 봄부터 징집 인원이 점차 더 늘어났다. 항의를 위해 학생들은 ‘농성토론회’라는 새로운 정치토론 및 선동 형태를 창출했다. 농성토론회의 목표는 일방적인 강의 방식을 탈피하여 토론과 정보전달을 통해 활발한 정치활동 참여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농성토론회는 1965년 3월 24일 미시건 대학에서 처음으로 실험되어 그해 5월 15일에는 전국 122개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었다.”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베트남회의’ 참가자 3천명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고 박자를 곁들인 손뼉에 맞춰 베트남민주공화국 대통령 호치민의 이름을 소리 높여 연호했다. (...) 프랑스만 해도 좌파와 급진좌파 그룹을 대표해 3백 명이 왔다. 영국에서는 베트남 연대 캠페인VSC와 영국 신좌파의 타리크 알리, 로빈 블랙번이 왔고, 이탈리아에서는 (...)”

 

  “1만 5천명의 참가자가 ”호! 호! 호치민!“, ”우리는 급진적인 소수다!“를 외치며 부드러운 물결처럼 베를린 시가를 가로질러 이동해간다. 사회학자 로빈 블랙번이 나중에 평가하듯, 처음으로 ”1968년의 정신“을 느낀다고 믿은 순간이자, “고무적인 새로운 정치적 분위기”였다.” (*4)

 

  이제 전선은 미국 국내로도 확대되었다.(*5) 전쟁에 반대하는 군중은 계속해서 불어났고, 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의 희생 또한 늘어났으며, 매체들은 국내 전선의 이미지들까지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냈다. (*6) 베트콩들의 집요한 저항으로 전선의 상황도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소련과 중국의 움직임도 예상할 수 없었다. 결국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친 끝에, 1973년, 미국은 베트남에서의 철수를 시작했다.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COVID19 - 2020년의 미디어, 이미지, 진실, 공론장

 

  COVID19 -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 의해 이 사태는 이미 하나의 전쟁으로 규정되었다. 이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장소가 전장이며 모든 사람들이 전쟁 당사자라는 점에서 유례가 없는 전쟁이다. 사상 처음으로 세계 모든 국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자국 내의 전선을 갖게 된 것이다. 어쩌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21세기의 전쟁을 최초로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록 총알 없는 전쟁이며 사람이 아닌 대상을 적으로 삼는 전쟁이라 해도 전쟁이라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며, 전쟁의 이미지들 또한 우리를 향해 쇄도하고 있다.

 

  물론 반세기 전의 전쟁과 비교할 때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1960년대를 장악했던 뉴미디어 텔레비전은 이제 천천히 구시대의 유물로 밀려나며 자리를 내어주는 중이다. 대신 그 자리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다양한 영상 플랫폼, 그리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1인 미디어들이 잠식해나가고 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혼재된 채 하루하루 판도가 변화하는 과도기 속에 그들 미디어들이 지향하는 바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적어도 이 전쟁 속에서 한 가지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공통적인 가치로 언급된다. ‘진실.’

 

  베트남에서 매체들이 수행한 역할은 이미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 때 텔레비전과 사진은 이전과는 달리 날 것의 전쟁의 이미지를 생산했으며 그 이미지들은 사람들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진실’은 사람들을 분노로 묶었고 거리에는 공론장이 형성되었으며 현실의 변화를 추동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바뀌었다. 다채로워진 매체들은 베트남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들은 여전히 전쟁의 이미지를 생산한다. ‘진실’을 생산한다. 그리고 대중은 그 ‘진실’들 중 일부는 선택하고 일부는 버린다. 각각의 전쟁의 이미지들이 품은 각각의 ‘진실’들, 그것이 이미지의 언어다. 이 언어는 이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감정을 다루며 진영의 분열을 심화시킨다.

 

 

코로나 전쟁의 이미지들 (*7)

 

 

  코로나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어느 정도의 접촉이 감염을 초래하는가? 중국과 일본은 정말로 코로나를 극복했는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도시를 봉쇄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중국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의 미디어들은 보다 성실하게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진정한’ 진실을 추구했고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가져오는 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보다는 이미지와 진실에 대한 인식 변화 및 작동방식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편이 옳다. 베트남 전쟁 때에 미디어-이미지가 현실에 실재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로 여겨졌다면, 오늘날 미디어-이미지는 여전히 진실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실재하는 현실을 드러낸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스스로 현실을 창조한다. 단일한 세계의 진리, 이데아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주장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이 형성된다. 이미지를 공통의 언어로 하는 정동의 공론장. 히토 슈타이얼에 따르면 그것은 상품의 형식으로 조직된 사적인 공론장이며, 엄밀한 의미에서는 전혀 공적이지 않은 새로운 공론장이다. 경제적 차원에서 미디어가, 방송이 만들어낸 공론장들 - 민영화된 공론장들.

 

  “(상품의 형식으로 조직된) 이런 공론장들은 (...) 형식의 산업적 획일화를 통해 국제적인 언어를 말하지만, 그럼에도 극소수에게만 이 언어에 참여하도록 허용한다. 공공성 없는 공론장은 연결하는 동시에 고립시킨다. 그것은 세계 속에 장소를 지정하지만, 그러면서 고향 상실의 두려움을 부추긴다. 그것은 단순화함으로써 소통한다. (...) 그것은 우리를 이 세상의 가능한 모든 것들과 실시간으로 직접 접속시키지만. 이 연결의 속도와 형식을 정해준다.”

 

  “그것은 즉각적인 효과, 호기심과 전율, 또는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자만심에 기반을 둔다. 뉴스 채널들의 언어는 사물의 형식적 잠재력이 아니라 사물의 순응주의를 실어 나른다. 그 언어 속에서 사물들이 예외적이고, 재난적이고, 중심을 벗어난 것처럼 작동할수록, 그 밖의 모든 것들은 그만큼 더 예전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8)

 

  자신들은 코로나가 사실 치명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이 비상사태에 모든 것이 - 실은 모든 것이 아닌 - 새로운 기준에 따라야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지금 이 순간 모두 이와 같은 공론장에 존재한다. 이 전쟁은 그렇게 우리 가운데 이어지고 있다.

 

 

 

  영구전쟁론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현재의 다큐멘터리 언어는 강렬한 감정들의 지속적인 주입, 연례 시장의 낡은 호기심을 디지털 시대를 향해 발사하는, 비극과 엽기의 두서없는 혼합을 통해서 관객의 신경을 자극한다. 점점 더 거칠고 점점 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이미지로 - 물론 그 이미지들에서 볼 것은 점점 더 줄어든다 - 영구적 위기 상황을 소환한다.”(*9)

 

  이 시대의 이미지 언어는 정서를 다루며 앎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앎은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감정적 대중 앞에 무의미한 탁상공론으로 여겨진다. 또한 앎은 어떠한 의견과 입장의 대립이 발생했을 때 그 대립의 원인을 ‘당신이 무지한 탓’으로 몰아세울 때 동원된다. 즉 앎은 반지성주의자들의 방식으로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사이비 계몽주의자들의 방식으로 위계를 구분 짓기 위한 엄포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에 대하여 몇몇 철학자들은 비슷한 우려와 비슷한 과제를 제시한다. 가령 수전 손택은 전쟁의 이미지, 타인의 고통이 담긴 그 이미지들을 보며 상기하고 사색하라고 말한다. 연민을 품기보다, 그 고통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타박하기보다 그 고통을 설명하려는 기존 권력의 합리화를 성찰하고 검토해보자고 말한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그는 아우슈비츠의 사진들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이미지들을 상상-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히토 슈타이얼은 정동의 영역을 피해가지 않고 성찰적으로 정치화하는 다큐멘터리야말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 공통된 지적들은 이 문제가 결코 풀기 쉽지 않음을 반증한다. 당장 우리 눈앞으로 날아드는 코로나 전쟁의 양상과 이미지들 또한 비관을 배가시킨다. 뒤이어 미국으로부터 일기 시작한 새로운 전쟁, BLM 역시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쉼 없이 밀려들고, 우리는 아직 갈 길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가운데 단 한 가지 알고 있는 사실, 명심해야 할 전제가 있다면, 우리는 1960년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더 이상 그 때와 같은 방식으로 미디어, 이미지, 진실, 공론장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미지가 ‘진실’이 되어 보편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그와 같은 일은 점점 더 드물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말하자면, 베트남 전쟁은 더 이상 도래하지 않게 될 전쟁이다. 대신 코로나 전쟁의 양상은 이제 한동안 되풀이되리라. 매체, 이미지, 진실, 공론장에 있어 한 번 변화한 인식과 작동방식은 다시는 이전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이미지의 언어와 정동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불안에 젖어 분열된 세계를 마주한다.

 

  바로 그곳이 출발점이다. 그로부터 닥쳐오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서 상기하고, 상상하고, 성찰하면서,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 말했듯, 희망은 길과 같아, 본디 있던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기는 것이다. (끝)

 

 

 

 

 

 

  *1

  *2 “실질적으로, 잘 알려진 사진들이 연출되지 않은 채 찍히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한 세대의 의식에 아로새겨지게 된 이미지들이 지닌 도덕적 진정성의 핵심이다. (...)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한 가지 설명 방식이 있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에는 텔레비전이 전쟁의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매체가 됐고, 그에 따라 레이카나 니콘 카메라를 손에 든 채 상당 기간 숨어 다니며 행동했던 대담하고 고립된 사진작가들은 이제 텔레비전 스태프들과 경쟁해야만 했으며, 그들의 접근을 참아내야만 했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90p

 

  *3 (좌측상단부터 차례로) 1. 미군의 폭격을 통해 달아나는 베트남 소녀와 아이들. 이른바 네이팜 소녀라 불리는 베트남전을 상징하는 이미지. 사진 속 소녀 ‘킴 푹’은 이후 너무나 유명해진 이 사진 탓에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2. 1968년 폭로된 미군의 ‘미라이 마을 학살’. 이것은 베트남에서 벌인 미군의 전쟁 범죄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3, 4. 베트남 전쟁 박물관에 전시된 베트남 종군 사진작가들의 사진들. 이들의 국적은 서방과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아우르며, 이들 중 대부분이 전장에서 사망하였다. 5. 당시 흑인민권운동과 연계해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벌이는 흑인들. 뒤의 피켓에는 “그 어떤 베트남인들도 나를 검둥이라 부르지 않았다” 라고 쓰여 있다. 6.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상징하는 일명 ‘꽃과 군인’ 사진. 1967년 미 국방부 앞 반전시위에서 촬영되었다. 사진 속 소녀는 당시 17세였던 잔 로즈 카시미르다.

 

  *4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 창비, 26p-36p

 

  *5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와 관객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 생각할 때 이 사실은 중요하다. 각국의 방위군과 경찰들에게 저항하는 학생들이 죽어갔고, 이 운동의 주요한 지도자들 중 몇몇은 암살과 테러로 목숨을 잃어야 했음을 생각했을 때, 세계대전의 기억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고, 흑인민권운동이 동시대에 행해지고 있었으며,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가고 있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와 그를 바라보는 반전운동 대중들 사이의 거리가 적지 않게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베트남 전쟁의 중단을 호소하며 분신자살한 미국인 노먼 모리슨과 앨리스 허츠, 반전운동의 대가로 모든 커리어를 잃은 무하마드 알리, 또 그들과 비슷한 선택을 내린 숱한 외국인들의 행동은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6 "오하이오 켄트 주립대에서는 주 방위군이 비무장 학생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네 명을 살해하고 여러 명을 불구로 만들었다. 전 세계로 전해진 사진 한 장은 죽은 학생 중 한 명의 시신 위로 몸을 구부린 채 경악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한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희생자 중 한 명인 앨리슨 크라우즈의 아버지가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표정으로 닉슨 대통령이 시위 학생들을 ‘건달들’이라고 지칭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외쳤다. “내 딸은 건달이 아니었소!”
  몇 년 후 학생들과 몇몇 초빙 학부모들이 내 강좌 ‘미국의 법과 정의’ 첫 시간에 앉아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켄트 주립대의 총격 사건을 강의 주제 중 하나로 삼은 강의계획서를 나눠주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 학생 한 명이 다가와 자기와 부모님을 소개했다. 그녀의 이름은 로리 크라우즈였고 앨리슨의 동생이었다." 하워드 진, 『달리는 열차에 중립은 없다』, 이후, 161-162p

 

  *7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1. 뉴욕타임즈는 2020.5.24판 1면을 코로나로 사망한 1000명의 부고로 가득 채워 내보냈다. 2. 올해 3월 코로나 감염 환자와 악수하는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그는 건강한 사람은 환자와 악수에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사진을 찍었고, 세계 국가 수반 중 최초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3. 코로나 초기, 프랑스 BTM 뉴스에 출현해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간호사. 악화된 상황을 침착하게 설명하던 그녀는 영상 말미부터 울부짖기 시작한다. “부탁해요. 제발요. 우리 말 좀 들어요. 제발 집에 있어요. 그게 당신과 우리를 살리는 거예요. 프랑스 동부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죽고 있어요. 우리는 죽은 동료들을 묻고 있어요..." 데스크의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4. 텅 빈 베드로 광장에서 비를 맞으며 환자와 의사들을 위해 기도하려 나아가는 교황. 5. 일본 SNS에서 유행한 ‘코로나 챌린지’. 더러운 문손잡이를 핥아도 감염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 6. 우한의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우한을 방문한 중국 주석 시진핑의 고전적인 연출 이미지.

 

  *8 히토 슈타이얼, 『진실의 색』, 워크룸, 239p

 

  *9 위의 책, 2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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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20. 6. 2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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