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P] RappIN'文學 (5) - 기술적, 내용적 가사쓰기

728x90

화요프로젝트(화요P)란? 길드다의 멤버들이 각자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각자 달에 한 번씩 화요일에 업로드 합니다. 누군가는 텍스트랩 수업을 위한 강의안을 쓰고, 누군가는 길드다 이슈를 발전시키기 위한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넘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훈련을 위한 글을 씁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매주 모여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송우현은 보릿고개 프로젝트의 시리즈이자 텍스트랩 시즌3 '호모리릭쿠스'의 강의안을 연재합니다. 

 

 

기술적, 내용적 가사쓰기

 

보통 ‘힙합 곡의 가사’ 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최근 사람들에게 묻는 다면 대부분 이런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성공, 자랑질, 돈, 여자, 차, 디스, 빠른 속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 확실히 많은 힙합 곡들은 저런 키워드를 가지고 있고, 그런 이미지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저런 키워드와 이미지만 놓고 보면 좋은 가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좋은 가사를 쓰고 싶은데, 좋은 힙합 곡의 가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가사들은 어떻게 써졌을까?

우선, 가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라임과 플로우 같은 기술적인 면과 가사의 내용적인 면. 라임은 운율이라고도 하며, 문장 속에서 같거나 비슷한 발음의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Twinkle, twinkle, little star ~

How I wonder what you are ~

Up above the world so high ~

Like a diamond in the sky ~

Twinkle, twinkle little star ~

How I wonder what you are ~

 

동요 작은 별의 원곡 가사이다. 핑크색으로 강조한 부분이 모두 ‘ㅏ’ 발음의 라임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렇듯 라임은 동요나 시, 가요, 개그(주로 아재개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기법이다. 랩에서는 가사의 듣는 재미를 더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랩 가사의 첫 번째 제약이기도 하다.

플로우는 노래에서 박자를 만드는 흐름이다. 위에 나온 작은 별 가사를 계속해 예시로 들자면, 문장 마다 2음절씩 4번을 뱉으면서 마지막 음절을 길게 발음하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작은별은 이 플로우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곡이다. 이런 박자의 흐름은 랩의 전반적인 형태이자 랩 가사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제약이다.

이 두 제약 속에서 글의 내용을 전달하는 게 랩 가사라고 할 수 있다. 예시들을 보자.

 

기술적인 면을 강조한 가사

 

Best(비트가 드랍 되면서 같이 강하게 뱉을만한 단어로 사용) 그게 나의 처음

Wanna be

passive 나의 몸에 베인

Cash(라임을 맞추기 위해 길게 발음) rules everything

몇 년이 지나도 around me (우탱클랜의 ‘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를 인용)

생일 케잌 크림 달콤

X white color 말콤 (말콤X 말장난)

Natural born .com

Category ya already know

Let it snow let it snow (뜬금없는 전개와 지루하지 않게 더 노래같이 부르기)

여름이 다가오니 불러

Let it cold let it cold

부르다 걸리겠어 감기에

열이 올라버려 감기에 상시 항시 상비해줘 나를 위해

Tryna be cooler man cold boy

Jerry girl change to tom boy (톰과 제리, 걸과 보이를 섞어 톰보이라는 단어를 만든 말장난)

솔직하지 못한 너네 모습이 다 속보임

거짓말 들킨 게 속보임(같은 단어, 중의적 의미) 내가 이겼다는 건

통보임

Noreply@naver.com

좋아요와 댓구알 (댓글, 구독, 알람설정의 줄임말)

좋긴 뭐가 좋아 시발넘들아 닥쳐

 

김왈리  네추럴본닷컴

 

 

https://youtu.be/vcJOUzxJTYU

 

 

위에서 말한 (나름ㅎ)전형적인 힙합곡의 가사처럼 보인다. 이 곡은 진실되지 못한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가상의 공간 ‘네추럴본닷컴’을 상정해놓고 별 내용의 의미 없이 써내려간 가사이다. 다만 라임과 플로우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을 가시화해서 드러낸 것이다. 평소에는 이렇게 주석 하나하나 달면서 쓰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 중에서 소리가 예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어서 붙였으며, 선택한 단어에 대해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꼬리물기 하듯이 써내려간 형태이다. 평소에 이러한 힙합 곡들을 많이 듣는다면 이런 방식으로 가사를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이렇게 써내려가는 것보다, 이후에 자기 검열할 때가 더 어려웠다. 스스로 내용이 없으면 구린 가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내용적인 면을 중시한 가사

 

책상에 엎드려 잠 들 때 쯤

내 머릿속을 휘저은 작은 태풍

겨우 종이 한장의 팔랑임이 만든 바람은

날 뒤집어놓기엔 충분했어

남다름을 추구하긴 했어도

흐름에 몸을 맡길 때가 많은 나였는데

이제는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준비가 안된 채로 계속 흘러가네

흘러 흘러 흘러 가

친구들도 좋지만 이젠 내 삶을 생각해야할 때

흘러 흘러 흘러 가

이도저도 아닌 삶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

결국 똑바로 마주했지 그놈과

가사 쓸 때처럼 펜을 잡고 갈겨봐

이미 서명이 돼있던 부모님의 이름

끝까지 말리던 선생님마저 날 응원하고

 

I quit

kokopelli  자퇴서 (미공개곡)

 

제목에서부터 느껴지지만 이 가사는 자퇴를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담은 가사이다. 자퇴를 고민하면서 했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가사의 내용만 본다면 일반적인 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이 가사가 되는 이유는 맞춰져있는 라임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플로우 덕분이다. 보통 자퇴라고 하면 신중하고, 긴박한 고민의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나에게 자퇴는 생각보다 엄청난 결정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나에게 제일 알맞은 선택지였음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탓이리라. 그렇기에 담담하고,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플로우로 랩을 디자인했다. 무엇보다 스토리텔링 중심의 자연스러운 전개를 이어나가려고 신경 썼기 때문에, 간단한 라임 위주로 구성하였다. 이렇게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있고(충분하고), 하고 싶은 의도가 있다면 처음부터 가사로 디자인해나가도 된다. 하지만 경험이 없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어나 아들~” 엄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자는 내~내 전자파 쐬고 있는 거야~ 안 그래도 하루 종일 핸드폰 붙잡고 사는데, 잘 때만이라도 떨어뜨려놓는 게 어때 아들?” 눈을 뜨자마자 듣는 잔소리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만, 굉장히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맞는 말이니 인정할 때 나는  라고 대답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핸드폰과 붙어 지낸다.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애들이라면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등교시간에 핸드폰 대신 주변을 살펴보니 정말 거의 모든 친구들이 핸드폰을 보며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주변을 살피며 깨달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초등학교 때는 이 언덕에 서면 구봉산이 잘 보였는데, 어느새 아파트들이 한 겹, 두 겹 산을 가려놓았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도 있는데, 요즘 같은 콘크리트 숲에서는 나무 한그루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글을 쓰면서 정리하고, 가사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가사를 처음부터 가사로 써내려간 사람들에게도, 가사를 처음 써보는 사람들에게도 이 방법을 추천한다. 하고 싶던 말이나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어느 날 들었던 생각들을 일기처럼 적어놓은 것이다. 이 글을 가지고 쓴 가사는 이렇다.

 

전자파에 갇혀 콘크리트 사이

나무를 찾길 바라는 부모님들의 마음

 

한 단락의 글이 가사 두 줄로 바뀌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단어나 표현을 정한 뒤, 느낌을 잘 살려서 적었다. 전달되는 내용은 추상적일 수 있지만 전달되는 느낌, 단어들의 소리가 좋다거나, 사람들을 읽었을 때 감동을 느낄만한 시적표현들을 살리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이처럼 가사는 일기보다 더 추상적이고 압축적으로, 일기는 가사보다 세세하게 적히는 경향이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일기를 비롯한 일반적인 글쓰기는 논리적인 전개가 필요하지만 가사에서는 어느정도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논리적인 전개가 뭉개져도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자퇴서’처럼 세세하게 풀어 적은 가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라임, 플로우를 신경쓰다보면 그 맥락은 지키기 힘들어진다. 내용도 잘 살고 플로우와 라임까지 맞추는 게 가장 좋은 가사이겠지만, 다 지키면서 재미있는 가사를 쓰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 처음엔 내용 하나하나를 다 전달하려 하지 말고 플로우와 라임 속에서 감각적인 말들을 골라 적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가사 두 줄엔 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던 라임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이 가사 두 줄이 하나의 라임으로 묶여 다음 나올 두 줄과 상호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뒤에 나오는 가사는 이렇다.

 

할 일은 차고 넘쳐

학교로 끝 인줄 알던 애는 빌딩 위에 섰고 다들 관심 밖

kokopelli - flower

 

https://youtu.be/ie2M3Nop7yQ

 

라임을 맞출 때 꼭 가사 한 줄 한 줄로 맞춰야 할 필요는 없다. 한 줄 한 줄 맞추면 내용에 대한 자유도도 떨어질뿐더러, 재미도 없어진다. 차라리 라임을 맞추지 않는 게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쓴 방법 이외에도 라임과 플로우를 구성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고, 얼마든지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 수 있다.

 

다른 래퍼들은?

 

유명래퍼 빈지노는 비트를 들으면서 외계어로 흥얼흥얼 거리고 그 외계어를 기반으로 플로우를 짠 뒤, 가사를 채워 넣는다고 한다.

 

한남 더 힐에서

가랑일

찢고 있지

한 사람이

살기엔 너무 넓은 집

이 느낌 걔넨 모르지

문자 왔어 우리 은행이

돈이 들어왔어 고객님

1,10,100,1000 ,1억이

읽씹했어 이런 일 처음은 아니기에

웃는 emoj

빈지노 - Flexin

 

https://youtu.be/eSdKzHRscTA

 

내가 생각하기에 빈지노의 방식이 잘 드러나는 곡인 것 같아 가져왔다. 비트를 들으면서 멜로디와 플로우를 외계어로 먼저 구성한 듯 하고, 정해진 주제(Flex=자랑질)에 맞게 가사를 집어넣은 것 같다. 짜 놓은 플로우에 집어넣기 위해 짧은 문장으로만 구성되어있고, 라임을 맞추기 위해 다음 문장을 끌어다 쓰는 센스도 돋보인다. 제일 대단한 점은 플로우와 멜로디를 우선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잘 살았다는 점이다. 잘 짠 플로우나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그 위에 얹어진 가사가 재치 있거나 자연스러울 때, 랩이 가장 즐거워진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는 입을 하나의 악기로 사용하면서, 좋은 박자와 라임, 플로우 등을 구사한 가사를 보았다. 가사 내용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리듬을 쪼개고, 소리를 내는 악기로써 사용하는 것이다. 보다 기술의 영역에 가까우며, 빠른 속도로 많은 음절을 뱉는 속사포 랩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가사 내용에 집중하여, 시나 글을 쓰듯이 써낸 가사를 보았다. 위와 반대로 기술적인 면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가사에 자신의 삶이나 철학을 잘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 경우는 랩이기 위한 요소들(라임이나 플로우)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글쓰기와 가사는 크게 다를 게 없다. 시를 제외하고 내가 가사와 제일 유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기나 수필이다. 둘 다 아무런 이야기나 할 수 있다는 점, 자신의 일을 적는다는 점이 그렇다. 본토 래퍼들 또한 자신의 힘들고 거친 삶을 드러내고, 빈민가에서의 성공을 꿈꾸고, 결국 성공하고 자신이 누리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 형태가 정형화 되다보니 우리가 떠올리는 힙합 가사의 키워드는 성공, 자랑질, 돈 등인 것이다.

위에서 보았듯 방식은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사는 내용과 기술(라임과 플로우)사이의 조율이다. 플로우와 라임 같은 기술은 가사의 내용이 좋을 때 더 돋보인다. 반면에 내용은 내용으로만 있을 때는 듣는 재미가 없고 일반적인 글과 다를 게 없어진다. 그렇기에 둘의 조화를 이루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는 선택이다. 위 방식들을 참고하여 멋있는 가사를 써보자!

Writings/송우현의 [힙합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9. 10. 30. 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