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 3회]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

 

개인들을 이런저런 속성이 부착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원자론적 인간관은

개인적 정체성들과 여러 능력들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 과정들과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목공 반장님이 타카 핀을 갈아 끼우다가 집어던지면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형, 그렇게 성격대로 할 거면 여기 왜 왔어! 그럴 거면 직접 일 받아 해!”

 

‘이 형’이라는 분도 성격이 만만찮다. “어 알았다 그래!” 하고선 작업벨트를 풀어놓고 현장에서 ‘휙’하고 나가버린다.

 

당황한 내가 이 형을 따라 나가려는데 반장님이 나한테도 버럭 한다. “김 실장! 내버려 둬. 내가 혼자 끝내면 되니까 가는 사람 잡지 마!” 고래 싸움에 기가 눌린 새우 실장은 현장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혹여 등이 터질까 잠자코 반장님 말을 듣는다.

 

버럭 반장님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하던 목공 반장님이 최근 많이 바빠져서 이번 현장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주변 작업자 분들에게 수소문해 새로운 목공 반장님을 소개받았다. 최근에서야 함께 일을 하게 된 이 ‘버럭 반장님’은 보기 드문 목수다. 한옥으로 시작해 가구공장에서도 오랜 기간 일했고, 목공으로 할 수 있는 갖은 일들은 두루 해본 분이다. 나이가 많고 말씀이 많아 처음 만났을 땐 조금 걱정을 했다. ‘속도가 느리진 않을까’, ‘꼼꼼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러나 실력을 확인한 건 바 테이블bar table의 마감몰딩을 만들 때였다.

 

합판으로 만든 테이블의 상판은 절단면이 거칠다. 그래서 절단면을 가리기 위해 원목으로 몰딩을 붙이는데, 나는 이왕 붙일 몰딩에 멋을 좀 부리고 싶었다. 반원 형태로 몰딩을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목공 반장님은 이런 몰딩을 공장에 주문하고 현장에선 재단과 결합만 했으므로, 난 당연히 주문을 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옆에서 뭔가 뚝딱뚝딱 하던 버럭 반장님이 나에게 반원 몰딩 샘플을 가지고 왔다. “김 실장, 이거면 되지?” 현장에 있는 톱과 대패만 가지고 금세 몰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몰딩과 몰딩이 이어지는 부분에는 제비촉을 파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주셨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지 않겠냐는 내 걱정에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거 못하면 그게 목수야?”한다. 내가 놀랐던 것은 이런 얄궂은 디테일들을 챙기면서도 목공작업이 내가 생각했던 공기보다 하루가 빨리 끝났다는 것이다. 목수님은 정말 몰딩도, 제비촉도, 이 형의 이탈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약속을 지켰다. 나는 이 형과 반장님 사이의 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골라 쓰는 게 아니고 고쳐 쓰는 것

반장님이 이 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와의 두 번째 일에서였다. 첫 현장에서 반장님이 만드는 제비촉을 눈여겨보았던 나는 가구에 그것을 적용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주문받은 가구에 그것을 실현할 기회가 오자마자 반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장님은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며 실력을 괜히 보여줬다고 투덜거렸지만, 막상 도면을 볼 때는 “김 실장이 그림 그릴 줄 안다”며 싱글벙글했다.

이 형과 함께 일 할 때와 달리 반장님은 새로 온 보조 목수 김 형에게 자잘한 잡일들을 많이 시켰다. 청소를 시키고, 공구를 찾아오라고 하고, 비교적 간단한 목공만을 맡겼다. 난 혹시 그 날의 버럭 때문에 이 형이 아닌 다른 분을 보조로 구해 오셨나 싶어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김 실장, 그럴 리가 있나. 그날 일 끝나고 이 형이랑은 소주 여러 병 했지.”

 

 

목수님이 김 형을 데려온 것은 일의 성격 때문이었다. 자신이 디테일을 챙기는 동안 진도가 나가야 하는 현장에서는 성격이 세더라도 일을 빠르게 밀고 나갈 이 형과 같은 보조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제비촉을 가능케 했던 것은 사실 이 형의 작업 속도였다. 반장님이 몰딩을 깎고 까다로운 제비촉을 파고 만드는 동안, 빠르게 세워져야 할 벽이나 테이블, 선반과 같은 큼직한 일들을 옆에서 이 형이 차례차례 해결해 나갔다. 반장님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김 실장, 전문가가 왜 이래? 내가 할 일만 딱 남았으니까 이 형한테 맘 놓고 성질부리지, 내가 다 못할 것 같았으면 쥐 죽은 듯이 있어야지!” 아차. 그러고 보면 이 형이 현장을 이탈한 뒤 남은 일은 반장님이 전담하던 제비촉 결합과 현장 정리가 전부였다.

 

반면 가구는 반장님이 온전히 가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도와줄 사람이 더 적합하다. 뭔가 하나 제시 할 때마다 한 마디씩 보탰던 이 형과 달리 김 형은 정말 아무 말도 없이 일을 했다. 그래도 버럭 반장님에게 중간 중간 혼나긴 했다. “이런 경우엔 나사를 빗겨 박아라, 여기엔 본드를 넣으면 안 된다, 이때는 사포가 아니라 대패로 다듬어라….” 얼핏 보기엔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김 형 역시 딱 봐도 오랫동안 목수 일을 해온 분 같은데, 어떨 땐 좀 너무한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이렇게 혼을 내시냐는 질문에 버럭 반장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실장, 사람은 골라 쓰는 게 아니라 고쳐 쓰는 거야” 보통 사람들은 반대로 말하지 않나?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야’라고….

 

우리는 점점 더 골라 쓴다

 

전통 결구법 중, ‘방두산지 장부맞춤’이라 불리는 결구법이 있다. ‘장부맞춤’이란 한쪽 나무에는 홈을 파고, 다른 한쪽 나무에는 촉을 파서 서로 끼워 넣는 맞춤의 형태를 말한다. 그러나 나무의 수축을 고려하면 이것도 충분하지 않다. 홈은 결과적으로 커지고, 촉은 점점 더 작아진다. 그래서 본드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흔히 볼 수 있듯 오래 사용한 가구는 삐걱대다가 약한 부위에서 부러지거나 빠져버린다. 따라서 원목 가구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런 관리를 비교적 간편하게 만드는 결구법이 ‘방두산지’, ‘메뚜기 장부’라고 불리는 것이다. 한쪽 나무는 홈을 관통시키고, 반대쪽 나무에는 촉을 길게 빼서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그 구멍을 관통하는 사다리꼴 모양의 촉을 끼워 넣어 망치로 두들기면 홈에 촉이 단단히 들어간다. 나무의 수축이 진행되어 홈은 커지고 촉은 작아지면 마지막에 끼워 넣은 촉을 망치로 두들겨 홈과 촉 사이에 벌어진 틈을 당겨준다.

 

이런 전통 결구법들은 모두 나무의 자연스러운 변화들, 각각의 나무가 가진 성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이 변화를 겪을 것이고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한다. 억제하지 않으며, 다만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이다.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에게 의존함으로써 구조를 유지한다. 여기엔 완성 혹은 완결이 없다.

 

 

본드를 잔뜩 칠하고 나사와 타카를 이용해 만든 가구들은 문제가 생기면 고쳐 쓰기가 쉽지 않다. 나무의 변화하는 성질이 아니라 완성된 물건의 형태를 기준으로, 물건은 고정된 실체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결된 형태에서 변화가 생기면, 바로잡을 수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변화하는 것, 각각의 성질들은 가구의 결함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골라 쓴다. 문제가 생기면 완성된 새로운 물건을 고를 뿐이다. 물건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한다.

 

얽거나 짜는 방법

 

우린 사회가 얼마나 똑같은 사람들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하는지를. “사람은 골라 쓰는 게 아니라 고쳐 쓰는 거”라는 반장님의 이 말은 내 입맛에 맞게 고쳐 쓴다는 사용자의 입장과는 다르다. 그러한 입장은 언제든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사람)이 시장에 충분히 있고, 나는 그에 대한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는 전제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반장님이 “바쁘지 않으면 좀 들르라”고 해서 간 곳은 진돗개 두 마리가 있는 100평 남짓의 작은 고구마 밭이었다. 입구에 떡하니 넓은 평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한쪽엔 공사가 끝나고 남은 목재가 쌓여있고, 다른 한쪽엔 다 마신 막걸리 병이 쌓여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다 먹어야 한다며 잘 익은 호박고구마를 큼직한 봉지에 담아주신다. 이곳은 일이 없는 주말 목공 팀이 다 같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목공 팀을 단순히 고용관계를 넘어서도록 하는 무언가가 여기에 있다. 이 밭에 발을 들이는 순간 반장님을 고용한 나도, 마냥 사용자가 될 수 없음을 직감한다. 이들은 삶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방두산지 가구의 만듦새를 떠올린다. 독자성이 아닌 상호의존성을 기본으로 한다. 각자가 가진 성질이 살아 움직일 만한 곳에 적절히 위치시키고 서로 의존함으로써 집단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 이렇게 보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부재들을 본드로 뭉게 타카로 찍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문제가 쌓인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 상대방을 세심이 주시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는 능력이다.

 

반장님이 이 형에게 소리를 버럭 지른 때, 이 형은 반장님이 제안한 방법을 거부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 형이 제안한 방법도 일리가 있었지만, 반장님은 며칠 뒤 다른 현장을 또 이 형과 들어가야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때론 맞는 말이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기세가 꺾여야 하는 때가 있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게 될 현장에서 모두가 옳은 말 맞는 말을 하면, 현장은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엔 세심한 조율이 있다. 반장님에 따르면 “이 형은 성깔이 더러워서 손이 빠른 거”기 때문에, 그의 성정을 완전히 막아선 안 된다. 그렇다면 김 형은? 반장님에 따르면 그는 자기 의견보다는 시킨바 임무를 착실히 수행한다. 다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해왔던 방식으로 일하기를 좋아한다. 해왔던 방식들과는 맞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해 다양한 경우에서 유연한 목수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고쳐 쓴다는 것, 아마도 이것은 장부맞춤의 사전적 정의인 ‘함께 얽히고 짜는’ 것의 다른 말일 것이다. 각각의 성질이 변화하고 움직인다는 사실에 기반 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서로 다른 것들이 엮여 존재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조건이다. 이때 골라 쓰는 것은 선택지에 있을 수 없다.

 

여담이지만, 질문이 하나 남는다. 그렇게 세심하고 역량이 뛰어나신 버럭 반장님이 정치에 있어서 빨간 당을 지지하는 건 어째서일까? 뭐 반장님도 고정불변의 실체는 아니니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20. 10. 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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