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P] 진짜 문제는 허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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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프로젝트(화요P)란? 길드다의 멤버들이 각자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각자 달에 한 번씩 화요일에 업로드 합니다. 누군가는 텍스트랩 수업을 위한 강의안을 쓰고, 누군가는 길드다 이슈를 발전시키기 위한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넘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훈련을 위한 글을 씁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매주 모여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김고은은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공부한 동양고전 텍스트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써보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이번 글은 칼럼 형식의 글입니다.

 

 

 

 

 

 

 

진짜 문제는 허세가 아니다

 

 

   그렇게 속을 알기 어려웠던 사람은 처음이었다. 몇 년간 10대와 20대를 위한 인문학 세미나를 진행해왔으므로, 아무리 첫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상대가 세미나에 가진 의사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어딘가 조금 불안해보이긴 했어도 이 세미나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어떤 이유로 공부를 하고 싶고, 최근에 애인과 헤어져서 환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시키기도 않았는데 술술 풀어냈던 것이다. 세미나가 끝나기 직전까지 한 마디라도 필사적으로 더 하고 싶어 하던 그 사람은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나를 따로 불렀다. “저 다음 주부터는 안 나오고 싶어요.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나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디가 안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인문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좀 더 정확하게는 ‘플라톤’이나 ‘니체’ 같은 사람들의 책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인문학을 공동체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에게 받게 되는 눈빛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인문학 공부를 한다는 소개를 들으면 내게 모종의 기대를 하기 시작하는데, 대단히 어려운 말을 하기를 혹은 방대한 지식을 뽐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지식인’ 같은 면모를 갖추지 못한 편이다. 그럴싸하게 말을 하는 능력이나 지식을 줄줄 읊을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므로, 아무리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도 도저히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기는 하지만 말로 뽐내거나 지식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아니, 그런 공부를 지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동양고전은 오늘날과 시대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거리가 있어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그런데 간혹 일부의 문장은 읽자마자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도 한다. 『小學』에 있는 명도선생에 대한 문장도 그 중 하나였다. 명도선생의 가르침은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의미한 비판이다.

 

   “세상의 학자들이 삶과 가까운 것은 버려두고 고원한 것만 추구하며, 낮은 곳에 있으면서도 높은 것을 엿보는 경향이 있다. 선생은 이처럼 경솔하게 스스로 위대한 체 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만약 고원하고 높은 것을 향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면 독서나 생각 그 자체를 부정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고원하고 추상적인 것을 공부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이나 유용함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만일 명도선생의 가르침처럼 고원한 것을 추구하느라 삶과 가까운 것을 버려둔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어려운 책을 읽으면, 그 책에 심취한 얼마동안은 어려운 만큼이나 스스로가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것이 많거나 깊지 않으면서, 더 어렵고 알 수 없는 것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몸집을 부풀리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도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세’라고 부르며, 허세 부리는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허세가 보기에 눈꼴 시렵다는 사실이 아니다. 속이 옹골찬 사람이라면 구태여 몸집을 부풀리지 않을 것이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몸집이 얼마나 작은지를 반증할 뿐이다. 나만 하더라도 자신이 한계에 부딪혔지만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허세를 부린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길드다를 드러내 보일 좋은 자리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길드다가 특이성이 있는지 자신이 없을 때 괜히 부풀리고 과장하며 말하게 된다. 누구나 종종 공작새처럼 날개를 펼쳐 보이니, 만약 허세를 목도했다면 그저 몸집을 부풀림으로써 스스로 얼마나 작은지를 증명한 것을 귀여워하면 되지 않을까.

 

 

 

   진짜 문제가 되는 건 부풀림이 그 장본인에게 미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때로 알맹이가 비었음에도 스스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내보이는 경우도 있다. “낮은 곳에 있으면서도 높은 것을 엿보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바로 그런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해서 “삶과 가까운 것은 버려”둔다. 즉 즉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을 알아차리지 않고, 공부의 장은 내 삶과 가까운 곳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공부는 훨씬 더 고원한 곳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대개의 사람의 경우엔 높은 곳을 잘 쫓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삶과 가까운 것을 버려둠으로써 삶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러한 경우에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명도선생이 가르침처럼 “결국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9. 10. 30.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