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김고은, 김지원, 이동은의 <다른 이십대의 탄생>

고은, <길드다 2018, 마이너스 500만원>

글: 고은 공부로 돈을 벌겠다고 일층에 길드다 공간을 꾸렸을 때, 우리 앞으로 문탁 네트워크가 있는 이층에서 500만원이 뚝 떨어졌다. 물론 500만원이라는 금액에 대해서는 온도 차이가 있었다. 목공 일을 하는 지원에겐 그다지 큰돈이 아니었을 터이고,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동은에게는 꽤나 큰 액수였을 터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짜 문제가 되었던 건 500만원이라는 금액이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이 돈을 받았으면서도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돈인 것 마냥 굴었다. 다른 멤버들도 나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우리는 장장 5년을 같이 공부했지만, 함께 돈을 만져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500만원 앞에 얼어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을 할지 논의하기 위해 엠티를 빙자한 워크샵도 가야했고, 회의를..

동은, <나에게 예술은>

1. 예술프로젝트가 만들어지게 된 경위는 이렇다. 그 당시 문탁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가끔 만나서 놀고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들의 공통분모가 바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 하지만 대부분 백수에 다양한 이유들로 지속적인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청년들을 모아서 “판은 깔아 줄테니 너희들은 결과물만 내라!”고 만든 것이 바로 예술프로젝트다. 그리고 나는 이 만들어진 판에 참여했다. 그리고 한 번도 그림을 배우거나 하지 않은 내가 예술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명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2년동안 진행하고 난 이후엔 이제 예술작업으로 밥벌이를 고민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나에게 예술은 무엇이었을까..

지원, <청년 모임, 이제 됐다 : 해봄, 석운동, 길드다>

글: 지원 요즘 청년들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취업, 결혼, 출산, 주거 등 현재의 중년들이 청년기에 당연하게 이루어 냈던 것들을 지금의 청년들은 쉽게 이루지 못한다. 스펙 쌓기 레이스는 고되고, 점점 길어진다. 백수도 많고, 나이가 찬 알바도 많다. 아예 정상적인 루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정상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취업준비를 위해 인생을, 이 한 몸 바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청년은 자주, 걱정 섞인 목소리로 호명된다. 그런데 나에게 ‘청년’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어색하다. 입에 붙지 않는다. 내 입에 붙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올 때도 이상하다. 촌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

고은, <나는 친구가 많다>

* 이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명식’을 제외하곤 모두 가명입니다. 글: 고은 문탁 네트워크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다. 10~20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대부분이 40~50대이다. 선생님들과 친구처럼 지낼 때도 있지만, 또래 친구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가끔 나이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선생님들이 자식이나 친정 이야기를 하실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피부로 와 닿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대로 내가 애인이나 또래친구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선생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역시 젊군”과 같은 감탄사나 조언의 말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같이 머리를 쥐어 싸고 고민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기도 하다. 한 일 년 동안 또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동은, <나의 뉴욕여행 레시피>

글: 동은 1. 책으로 뉴욕을 먼저 만나다 어느 가을날, 세미나 쉬는 시간에 문탁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런 말을 하셨다. “너네들 중에 뉴욕 갈 사람?!” 갑자기 뉴욕이라니? 난데없는 해외여행 제안 놀랐지만 해외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떠난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신이 났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날씨의 뉴욕이라니! 100일 수행을 함께 했던 고은이와 2030세미나를 함께하던 광합성(이하 합성), 문탁 선생님으로 뉴욕 여행팀이 꾸려졌다. 하지만 뉴욕 여행팀이 꾸려지자마자, 나는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난관에 봉착했다. 그 이유는 돈이 없어서도, 영어를 못해서도, 여행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바로 뉴욕여행팀이 꾸려지자마자 시작한 것이 ‘세미나’였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을 준비한다면 어..

지원, <여전히, 쪽파가 철탑을 이길 겁니다>

글: 지원 2015년 4월 17일에 나는 경찰에 연행되었다. 집회 및 시위 법, 도로교통법 위반. 그날은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거센 시위였다. 정부의 은폐 의혹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거리로 나왔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시위 행렬의 뒤쪽에 있던 나는, 함께 간 친구와 함께 앞으로 조금씩 나갔다. 앞으로 갈수록 시위는 거칠었다. 아니 내가 기억하기에, 시위가 거칠었다기보다는 경찰의 진압이 거칠었다. 간혹 경찰버스 위에 올라가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장한 경찰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욕이 전부였다.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밀고. 눈 깜짝할 새에 나는 방패 바로 앞에 서 옆 사람과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경찰의 무전기 소리를 들었다...

고은, <공자씨, 그동안 오해가 많았습니다>

글: 고은 1. 정신 차리고 보니 동양고전공부 중 동양고전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한자로 된 책이 내 손에 쥐어져있었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양고전공부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나있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지만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 같진 않다. 문탁 네트워크의 원문을 암송하는 세미나에서 『논어』로 한 페이지짜리 글을 쓰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을 가져가면 고전공부를 같이하는 사람들은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하고,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은 꼰대 같은 문장을 들고 왔다며 눈총을 준다. 사실 내 친구들만 동양고전을 보고 ‘꼰대 같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건 아니다. 인터넷에 『논어』나 공자에 관련된 정보를 찾다보면 세대별로 동양고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동은, <문탁에 처음 오는 친구들에게>

글: 동은 1. 백수는 좋지만... 동천동으로 이사를 온 건 고등학교 졸업을 한 직후였다. 그 때의 내 상황은 오지 한 가운데 뚝 떨어진 것과 같았다. 이 동네엔 내 친구도, 학교도, 친척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게 당황스럽거나 힘들어하진 않았다. 원래 돌아다니는 것 보다 집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는 그 즈음부터 집에서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은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을 보다 어느새 구름과 함께 날아가곤 했다. 그 때 생각했다. ‘백수는 좋구나...’ 당연하게도 엄마는 집에서만 지내려고 하는 나를 견디기 힘들어하셨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나는 두 가지 ..

지원,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조금 더! 다양하게 : ‘욜로YOLO’ 라는 명명에 대하여>

글: 지원 5년간 일했던 목공소를 그만둔 것이 8개월이 넘었다. 실업급여도 끊겼다. 나는 반쯤은 공부하는 백수지만, 반쯤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아무래도 스스로 하는 일이라 돈 관리나 시간 관리에서 어려움이 많지만, 일하는 시간에 비해 벌이는 전보다 좋다. 그런데 왠지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시간도, 벌이도 분명 더 나아졌는데 통장 잔고는 여전히 쓸쓸하다. 왤까? 내가 비싼 평양냉면을 너무 많이 먹었나? 나는 내가 벌고 쓴 돈이 얼마인지,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계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헉. 이럴 수가. 누구는 월 50만원을 적금을 붓는다는데, 나는 월 70을 노는데 쓴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소비생활을 두고 ‘욜로’라 부른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

고은, <참견의 힘>

글: 고은 문탁 네트워크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들어온 내게 내려진 첫 미션은 ‘수행’이었다. 수행승도 아닌 내게 수행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사실 이 수행은 내가 아닌, 나와 동갑내기 친구 동은이에게 내려진 지령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동은이에게 문탁쌤이 말했다. “100일 동안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너는 곰에서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런데 때마침 동은이와 또래인 내가 대학을 자퇴하고 갈 곳이 없어졌으니, 나도 수행에 동참해보라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1. 쓰레기봉투만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수행 하루 일과는 아주 단출하다. 아침 아홉 시까지 문탁 네트워크에 도착하기 위해 일곱 시 반쯤 집에서 나온다. 보통은 한 시간 남짓이면 공간에 도착하지만, 이른 시간엔 출근시간이 겹쳐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