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 강학원 S3 4회차 <미안해요, 리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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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길드다 강학원에서는 소수의 인원이 모여 켄로치의 <미안해요, 리키>를 봤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인문학에서도 같은 영화를 보았더군요. 

(영화인문학 팀의 후기 읽어보기 ☞ http://moontaknet.com/?page_id=853&mod=document&uid=31851)

 

 

 

 

 

금융위기 이후에 일자리를 저임금 임시노동자로 전전하던 리키는

친구의 추천으로 물류배송회사와 '함께' 일하는 '개인사업자'가 됩니다. 

'개인사업자'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배송 시스템을 관리해주는 기계부터 트럭, 근무 지역, 고객의 불평까지 모조리 개인의 몫이 됩니다.

착실하고 성실하게 일하던 리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된 것은 바로 그 떄문입니다.

아들에게 문제가 생겨도, 길거리에서 린치를 당해도 제때 배송하지 못해 생기는 모든 문제는 리키가 떠안아야 합니다.

 

 

영화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입니다.

처음 원제를 보고 주인공인 리키가 죽거나 사라지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만,

외국에서는 집 주인이 부재했을 때 배달부들이 남기는 메모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메모는 영화에서 몇 번 등장합니다. 제 기억으로 첫번째 등장했을 땐 딸과 함께 리키가 배송업무를 보던 중이었습니다.

리키가 개에게 엉덩이를 물어뜯기자 딸은 부재중이던 집주인에게 아빠의 팬티를 새로 사줘야 할 것이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일로 리키는 고객에게 컴플레인을 받고, 패널티를 받게 됩니다.

두번째로  등장했을 땐 린치 당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을 이끌고 일하러 가는 길에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녀오겠다는 메모를 이 종이에 남겨놓습니다.

 

 

 

 

 

켄로치는 이러한 현실을 매우 덤덤하게, 어떤 기교도 없이 차분하게 그려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모두 마음이 먹먹해져 별다른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택배기사들이 과로로 연달아 죽고 있는 요즘이라 더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켄로치가 담백하게 그려내는 현실과 그 사이사이 녹아있는 사람들의 온정을 좋아합니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등장인물들이 나눴던 온정만큼 포커스가 맞춰지지는 않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리키의 부인에게 안부인사를 건내는 할머니,

리키에게 택배를 받으면서 소소하게 덕담 혹은 욕을 주고 받는 고객들,

리키의 부인이 돌보는 환자들에게 갖는 따뜻한 마음씨,

환자들이 리키의 부인에게 보내는 각기 다른 방식의 애정.

 

 

저는 영화를 보는동안 리키의 부인 캐릭터도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구요.

양보할줄 알고, 들을줄 알고, 사람들을 허투로 대하지 않는 따뜻한 캐릭터였습니다.

그런 특기를 살려 사회복지사로서 많은 사람들을 돌보지만

밖의 일에 치여 실제로 집을 돌보는 일은 많이 신경쓰지 못한다는 점도 눈에 띄였습니다.

집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보며 예민하게 집안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건 리키가 아니라 리키의 부인이었습니다.

리키의 부인이 집안을 돌보지  못했을 때 실제로 집안을 돌보게 되는건 장남이 아니라 어린 딸이었습니다.

막내 딸이 혼자 밥을 챙겨먹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왔고, 늦잠 자고 말썽 부리는 오빠를 깨워서 학교에 보내기까지 하더군요.

 

 

여러모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이 많이 생각나는 영화였습니다.

그간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현실을 다시 돌아보기 좋았던 영화였습니다.

 

   "세계가 균열을 드러낼 떄, 세계가 우리의 마음씀(care)을 일으키고 우리에게 돌봄(care)을 청할 때, 비로소 시민과 시민적 행위가 등장하게 된다(...) 세계를 향한 마음씀/돌봄(care for the world), 이것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시민적 정서이자 시민적 덕목인 셈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에서 이 정서와 덕목에 힘입어 출현한 시민들이 있다. (...) 그들은 간호사이고 의사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사적 공간에서 나와 공적 공간을 지킨 사람들, 곧 슈퍼마켓의 계산원 노동자이고, 거리와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한 청소 소동자이며, 경찰 공무원이고, 트럭을 모는 운송 노동자이다. 흥미롭게도 그[한나 아렌트]는 이 모든 인물을 여성으로 그렸는데, 이는 이들이 수행하는 핵심 활동이 통상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돌봄, 또는 재생산 노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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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20. 11. 11.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