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강학원> 1회차 - '진실의 색' 후기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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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은

 

 

코로나, n번방과 함께 시작한 <길드다 강학원>
  지난 일요일, <길드다강학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코로나 때문에 뒤숭숭한 상황이어서, 길드다 차원에서 이런저런 준비들을 했습니다. 약간 넓게 앉기 위해서 장소를 파지사유로 바꾸고, 손 소독제와 소독 스프레이를 대량 구매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에 이어 n번방 사건까지 터지면서 세미나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시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인 <미디어와 신체>와 밀접하게 연결시킬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니 말입니다.
  이번에 읽은 히토슈타이얼의 『진실의 색』 분량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단어는 ‘스펙터클’이었습니다. 스펙터클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경험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스펙터클은 책 곳곳에서 등장했는데요. 가장 오랜시간 이야기하기도 했고 제게도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주제는 ‘스펙타클은 정말 의미가 있는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오늘날 만연한 스펙타클-이미지
  우선 이번에 읽은 범위에 등장하는 오늘날의 스펙타클은 두 맥락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록의 스펙타클입니다. 오늘날 객관적이고 정보 전달적인 ‘아카이브’에서 맥락 없이 뚝 떨어져나온 자료는 그 자체로 감정적인 자극을 일으키는 기록의 스펙타클이 됩니다. 둘째는 경험의 스펙타클입니다. 몸으로 체화하고 여럿이 함께 느끼는 정치적 경험 대비되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감정적인 스펙타클 경험입니다. 그러니까 스펙타클은 맥락이 없는, 개별화된, 감정적이고 흥분을 조장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와 n번방 사건에서도 스펙타클을 몸소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에 대해 정확하게 쓸 자신이 없지만,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개 코로나의 스펙타클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 불리는 정보·사실-이미지로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공포, 확진자 동선을 명확하게 그려냄으로써 일상영역에 짙게 깔리는 흥분감, 만연한 마스크와 소독제 이미지가 일깨워주는 사태의 심각성과 경계심 같은 것 말입니다.
  반면 n번방은 팩트와 그 해석(이를테면 이름 붙이기)이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팩트 논쟁보다 더 눈에 띄는 감각적이고 과격한 이미지들이 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의 가해자가 특정한 개인의 이미지로 고착화되는 현상,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워 분명하게 그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반응, 인터넷에 무수히 퍼지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반웅들이 모두 스펙타클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텍스트도 sns가 발달한 오늘날엔 충분히 스펙타클-이미지가 될 수 있는 것 같네요. 특히 짧게 단타로 쳐지고, 맥락 없이 올라오는 트위터와 인스타스토리 같은 경우는 명백히 스펙타클-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스펙타클에 대한 아감벤의 비판과 슈타이얼의 반박
  히토 슈타이얼에 따르면 스펙타클은 여러모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우선 스펙타클이 그 성질상 자본주의적인 추상개념(탈영토화)과 맥락을 함께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측면입니다. 사실상 자본주의의 특성과 스펙타클의 특성이 거의 비슷하고, 또 오늘날 스펙타클이 만연할 수 있는 것도 자본주의라는 시대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두 번째로 아감벤은 아예 ”스펙타클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하고 질문을 제기합니다. 이를테면 단타의, 감정적인, 아무 맥락이 없는 스펙타클 경험이 우리에게 정치적인 경험이 될 수 있겠냐는 말이지요. 우리는 이 두가지 비판에 대해 매우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아감벤의 비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가며 동의를 표했습니다. 스펙타클 이미지를 보고 잠깐 분노할 뿐, 정말 세계나 나 자신이 변화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지요.
  물론 저자는 스펙타클에 대해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생각보다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면서, 꼭 스펙타클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부분을 넣어놓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저자는 오늘날 많은 학자가 취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즉, 문제시되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겁니다. 스펙타클의 잠재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스펙타클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정치적 경험의 가능성은, 미학-윤리학 논문들이나 예상 가능한 폭력의 의례들 속에서가 아니라, 수단과 목적의 악순환으로부터 해방될 때에만 빛을 발한다. 그것은 아마 거의 모든 행동에 내재하는 예측 불가능함 속에 잠복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실재와 가상 사이에 있는 그림자 왕국의 영역에서 결정화되고, 역사적 순간들의 긴장을 갑자기 정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그것을 가장 덜 기대할 때, 우연이나 실수에 의해서 의도치 않게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신문을 읽거나 교통 체증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최루 가스 연막이 지평선에 서서히 스며들 때인지. (103쪽)
  그러니까 저자는 아마 우리의 다급함이나 불안함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경험하는 스펙타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가 규정할 수 있냐고 자꾸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처럼 누가 스펙타클을 해석해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코로나와 n번방의 스펙타클 또한 우리는 어떻게든 스펙타클의 가능성 위에서 포착해내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강박 위에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포착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즉, 스펙타클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의미화하고 포착하고 맥락으로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층위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펙타클의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펙타클을 자꾸 맥락 위에 위치시키려고, 그래야만 의미를 갖게 될 것처럼 안달복달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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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20. 3. 30.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