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P] 공간의 매니저 되기 (3) - 돈이라는 어려움,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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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프로젝트(화요P)란? 길드다의 멤버들이 각자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각자 달에 한 번씩 화요일에 업로드 합니다. 누군가는 텍스트랩 수업을 위한 강의안을 쓰고, 누군가는 길드다 이슈를 발전시키기 위한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넘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훈련을 위한 글을 씁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매주 모여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은은 공간메니저로서 길드다 공간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는 글을 씁니다. 때로는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자그마한 일을 벌이게 될 수도, 그리고 고민을 나누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돈이라는 어려움, 자유로울 수 있을까?

 

 

1.

대명제 하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돈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다. 돈 문제로 난처해지고 싶지 않은 우리는 자주 돈이 넘쳐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나. 흔히들 돈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현실을 말하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 말은, 곧 “돈으로 따져보자면...”과 대부분 같은 뜻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돈. 그렇기에 돈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거나 원인과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힘을 가진 돈은, 은연중에 문탁에서의 생활에서 가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문탁에서 생활하다 보면, 다른 가치들도 돈만큼이나 동급으로 논의되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우현이는 랩인문학이 시작하기 한 달 전 수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겨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만큼 하고 싶지 않다면 정말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사실 랩인문학은 단순히 하고 싶은 것 이상 ‘현실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던 것은 길드다가 그만큼 우현이가 가지고 있는 수업에 대한 자신감과 하고자 하는 의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2.

사고를 쳤다. 갑자기 이렇게 돈에 대해 주절주절 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4월부터 오랫동안 정산되지 않고 있던 <길드다 스토어>의 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돈이 없었고, 급한 대로 수중에 있던 돈을 썼던 것이다. 이런 나의 행동은 당연하게도 다른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친구들에게나 나에게나 모두 다.

<길드다 스토어>의 팀장(?)인 지원오빠와 길드다 회계 담당이었던 고은은 회의에서 논의되기 이전에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지원오빠는 처음 이 일을 알았을 때 당장 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은 이 사건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일단 나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사용한 돈을 메꾸려고 했다. 고은이도 먼저 돈을 빌려주려고 했던 지원오빠와 다른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어려움에 부닥친 친구를 도우려는 즉각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에 있어서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과정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 명확하게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 돈 문제에 있어서 모두 개인적으로 먼저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나는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서 사용한 돈을 채운 뒤에 이 문제를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라고 해봤자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모두 한순간 얼어붙었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이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 어쩌면 우리가 느낀 이상함은 지금까지 항상 공적인 부분으로 여겨왔다고 생각했던 돈을 우리도 모르는 방식으로 구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보였던 반응을 통해서 새삼 돈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은밀하고 익숙한, 개인적인 태도를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어려움에 부닥친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사용하는 돈에 대한 일로 바라보아야 했다.

3.

당연하게도 이 일이 있고 난 후 ‘돈’은 길드다의 공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작년에도 돈은 우리에게 문제적이었는데, <다른 이십 대의 탄생>(이후 <다이탄>)에서 고은이가 이 이야기를 담았었다. <다이탄>에 쓰여있는 글은 길드다가 외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쓰는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 나가는 게 낯설고 어려운 일이라는 글이었다. 작년에 우리는 외부의 친구들과 돈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에 대한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때에 따라 감을 따라 합의하고 돈을 사용했다. 그때에도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는 외부의 감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내부의 감각과 부딪쳤을 때였다. 하지만 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돈에 있어서 비슷한 태도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돈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구태여 섬세히 살펴볼 이유가 없었다.

어째서 돈은 함께 사용하는 것이 될 때 겉돌게 되는 걸까? 명식오빠는 작년 돈에 대한 유튜브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돈은 우리에게 특정한 관계를 지시하게 만든다.”고. 돈은 누군가와 만날 때 그 사람과 직접적으로 만나게 하기보다 돈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도록 만든다. 그렇게 돈을 통해서 관계를 갖게 되면 그사이를 오가는 모든 것은 기준에 맞춰져 계산되기 시작하고 상대와 내가 동등하지 못하는 생각이 들면 안 되기 때문에 계산은 당연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의 관계는 이것과 다르다. 친구의 관계에선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 없이 직접적으로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관계다. 오히려 계산하는 것이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길드다>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보면서 사회에서 만났다면 친구도 되지 않았을 사람들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지내온 시간 만큼 직접적으로 부딪치며 친구가 된 관계다. 그런데 우리에게 <길드다>라는 단위가 만들어지고, 하나의 회계가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친구라는 관계와 돈의 관계가 함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친구의 관계에 돈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결국엔 감정이 상하고 절연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도 작년에 가장 염려했던 것은 이 정도의 돈을 주었을 때 누군가의 감정이 상할까 어려워했다. 그리고 이 돈의 관계가 지속하는 한 언젠가는, 어쩌면 이미 감정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기준이 없는 게 미덕이던 우리가 ‘돈’이 목표인 길드다를 만들면서 기준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돈에 대해 논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계산적이거나 속물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임의로 그저 돈이 흐르게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도 없는 것이다.

4.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여러 글을 보던 중 문탁선생님이 2013년에 쓴 <공동체와 돈>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신기했던 것은 거의 5년 전에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금과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 우리는 매우 소박+소심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백만 원이 넘는 월세를 계속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어느 날 밤, 세미나를 함께 하던 친구 한 명이 나를 동네 술집으로 불러냈다. 그러더니 무조건 공간을 얻자고 하는 게 아닌가? 만약 돈이 모자라면 자기가 내겠노라고, 자기 모토는 ‘개념 없이 살자’라면서 말이다.

아...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심히 계산을 하는 게 아니라 과감히 계산을 버리는 게 방법이구나! 우리는 그날 이후 모든 계산을 버렸고 ‘개념 없이 살자’를 부르짖으면서 일을 저질렀다. 이후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진행되었다. 저축한 돈도 흘러나왔고, 생활비로 꼬불쳐 둔 돈도 흘러나왔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저마다 합리적인 소비기준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돈을 소비하는 것은 해선 안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문탁쌤은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소비’의 기준을 버리자고 말한다. 기준을 버릴 때, ‘개념 없음’은 여기서 시작한다.

문탁선생님은 길드다에서도 우리보다 더 많은 회비를 내고 계신다. 아마 문탁을 처음 만들 때와 다르지 않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는 욜로라던지 가심(心)비라던지 더 이상 일반적인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방향이 쉽게 공동체로 향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왜 우리가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이 어디에 소비하느냐는 어디에 자신을 순환시키고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기준을 버리자는 말이 기준을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돈을 사용할 때 이 돈이 나에게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것이다. 물론 무슨 돈을 사용하듯 그렇겠지만, 내가 사용한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순환할 것인지를 전제로 한 선택은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 문탁이 만들어질 때 내부적으로 더 많은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바랐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거나 공간을 조성하거나, 구성원들을 위한 방식으로 돈을 사용하거나... 이런 사소한 기준을 세워보는 것은 어떻게 돈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 더 선명한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 한해 기본수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개인에게 지급하는 돈이 더 많아졌고 개인에게 지급된 돈은 개인의 재량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많은 것을 내부로 순환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가시적으로 그런 시도가 미비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공동의 돈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량이라고 여겨졌던 개인의 소비에 대해서도 우리는 더 과감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5.

고은이는 <다이탄>에 실었던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2018년만큼이나 헤매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돈에 대한 아젠다가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어떻게 벌 것인가’로 옮겨갔다.” 글 말마따나 2019년은 어떻게 벌지를 논의하고 주력해왔지만, 이 사건을 계기를 통해 상대적으로 쓰는 일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실제로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회계 운영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그 안에는 업무에 따른 지급과 기본소득을 두고 얼마나 돈을 지급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길드다 공간의 월세와 지원금을 새롭게 후원을 받아본다거나, 회의의 일부를 길드다 공간의 월세뿐만이 아니라 선집의 월세에 포함해본다든지 하는 내용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들이 우리가 함께 돈을 아젠다로 만드는 과정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시도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돈을 많이 벌거나, 돈을 아예 안 쓰는 방식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더더욱 조금씩 경계를 부숴가면서, 때로는 다시 정교하게 조율하면서 계속해서 이야기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Writings/이동은의 [한문이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9. 12. 17.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