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야금야금 미학 알아가기 2편 - 굿즈라는 예술

728x90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청년들이 길위기금에서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매주 돌아가며 세 달 동안 저마다의 주제로 세 개씩의 글을 연재합니다글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동은의 프로젝트: 야금야금 미학 알아가기 - 2편

 

     굿즈라는 예술

 

 

 

   언제부터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전시회에 가면 언제나 전시 주제와 관련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전시의 동선 중간에 판매하는 곳이 있기도 하고, 그 판매 제품을 위해서 전시를 찾는 경우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런 전시 파생상품을 잘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파생상품을 파는 것은 전시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주제와 관련된 파생산품들은 출판시장, 엔터테인먼트를 가리지 않고 더더욱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 파생상품이란 대부분 이런 식이다. , 열쇠고리, 마스킹 테이프, 벳지, 티셔츠, 노트와 같은 제품에 다양한 주제를 덧씌우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가 쓰여진 컵소설 <셜록 홈즈>에 나오는 베이커 221번가 열쇠고리, 작가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마스킹 테이프, 영화의 소품을 본뜬 벳지, 롯데월드 머리띠, 가수의 콘서트 티셔츠, 그림이 인쇄된 엽서... 이렇게 상품이 어떤 주제와 함께하게 된다면 더 이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특정 주제와 관련된 상품을 ‘MD(merchandise)라고 부른다. 우리에게는굿즈財貨Goods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다.

 

 

굿즈의 흐름

   내가 알고 있는 처음 굿즈의 형태는 애니메이션의 팬들이 직접 원작과 관련해서 만든 팬시상품이다. 그들은 수익성을 목표로 두지 않고 좋아하는 작품을 재해석하며 직접 제작하는 것에 의의를 둔 팬심을 동력으로 굿즈를 제작했다. 이런 팬심은 굿즈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적용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소비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아이돌 산업은 소비하는 팬심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분야다. 아이돌 기획사 중에서도 한국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SM엔터테인먼트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굿즈 쇼핑몰로 만들 정도로 굿즈 판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다. 그 곳에서 판매를 한다면 더 이상 아이돌 상품은 브로마이드와 앨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류부터 김과자, 미니 가습기까지 모두 아이돌 상품이 될 수 있다.

 

 

 

SM이 운영하고 있는 매장의 모습. 여기서 판매하는 모든 것은 '공식'굿즈가 된다.

 

 

 

   굿즈는 이렇게 점점 무언가에 대한 사람들의 팬심을 자극시켜 여러 취향을 누리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점점 성장했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굿즈는 더 이상 기업이나 원작 컨텐츠에 기대어 제작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직접 프로젝트에 후원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후원에 대한 보상으로 굿즈를 제작해 후원자에게 보내는 방식이 늘게 된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에는 여러 유형의 프로젝트가 올라오지만, 굿즈가 사용되는 것은 주로 사회의 이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모금을 하는 경우다. 유기견, 유기묘를 위한 모금, 페미니즘이나 비거니즘, 환경보호를 알리기 위한 모금에 대한 감사와 후원의 증거로 디자이너들은 프로젝트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을 디자인해 프로젝트와 자신들이 내건 후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굿즈를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밀양송전탑 후원 벳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굿즈를 만들게 되더라도 이건 여전히 어느 정도 팬심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주제와 관련된 상품에 관심을 가지고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대상에 대한 애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후원자들은 그 모금의 의의를 두고 후원하기도 하지만 원하는 굿즈에 따라서 후원 가격을 정할 수도 있다. 이렇게 후원과 보상을 통한 굿즈의 판매는 제작자와 소비자간의 관계를 결속시킬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다양하고 여러 방식으로 굿즈를 소비해왔다. 아마 내가 그동안 해온 소비의 대부분이 굿즈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나는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팬심을 기반으로 한 소비를 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굿즈를 구매했던 것은 더 이상 대기업이 아닌 개인으로 바뀌어왔다. 나는 주로 작가의 개인 SNS 계정을 통해서 여러 상품을 구입한다. 그들은 소규모 편집샵이나 오프라인 장터, 크라우드 펀딩을 포함한 통신판매를 통해서 자기가 제작한 상품들을 판매했다. 처음에는 홍대나 이태원에서 소규모로 열리는 장터가 대부분이었지만 곧 이와 관련된 대규모 페어가 열리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것을 굿즈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상품이 어떤 컨텐츠에서 파생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건 어떤 컨텐츠에 관련된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물건들은 충분히 흥미로웠으며 예쁘고,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컨텐츠를 만들어 자신만의 생산라인을 만들었기에 기존에 있는 컨텐츠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상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굿즈가 다른 컨텐츠에 대한 파생상품이어야 한다는 점을 깨트린 것이다.

 

 

 

현재 텀블벅에서 진행하고 있는  (나의 팬심을 자극하는)  굿즈 판매 펀딩 프로젝트.

 

 

 

 

 

벤야민이 말하는 복제기술의 대중화

   더 이상 기업만이 물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본화된 컨텐츠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자신만의 주제를,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대량 생산뿐만 아니라 자유자제로 상품에 대한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은 바로 기술적으로 복제가 대중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제기술에 대해서 일찍이 고민했던 철학자가 있다. 바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쓴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그 복제기술 시초가 바로 신문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게 된 기계적인 인쇄술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벤야민이 살았던 시대에는 이런 복제기술이 출판 인쇄술에서 출발해 사진술, 영상술로 발전했다. 이런 변화로 인해 벤야민은 기술 변화에 따른 인간의 지각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손으로 모방되었던 대상이 점점 손의 영역에서 벗어나 눈과 귀로만 차이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대상에 대한 다른 감각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계라는 틀은 세계에 대한 자연적시각을 변형/왜곡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틀 짓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벤야민이 중요하게 포착한 것은 이러한 기술의 발달과 감각의 변화가 예술작품에 끼친 영향이다. 그는 복제기술의 발달이 예술의 작업방식에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하며 단순한 대상의 복제와 구분한다. 기존의 단순한 복제(모방)이 예술작업에 있어 진품 가품을 구별짓는 행위였다고 한다면, 오히려 기술 복제는 진품과 가품이라는 기생적 관계에서 벗어나 진품을 판가름하는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변화를 예술작품 속에 들어있는 두 가지 가치에 대한 비교로 설명한다. 바로 제의가치 전시가치.

   제의가치와 전시가치는 예술작품이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두 가지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로 기술복제 이전의 예술작품은 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형상물이었다. 성모상이나 불상같은 경우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예술작품이 가진 제의가치는 예술작품의 기능이 종교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기능했으며 작품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숭배적인 태도를 요구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진술처럼 예술작품을 기술적으로 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예술작품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보여 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성하고 고원한 예술작품의 인식이 해방되기 시작한다.예를 들면, 사진술의 발달로 인해 원판 사진 하나만 있다면 다량의 인화가 가능해졌다. 그 사진들 중에서 무엇이 진짜로 인화된 것인지, 더 이상 무엇이 진품인지는 의미가 없다. 이처럼 예술 생산에서 진품을 결정짓는 척도가 효력이 없어졌다. 벤야민은 복제기술의 이러한 효과가 예술의 기능을 바꿀 거라고 생각했다. 특정한 방식으로만 예술이 향유되지 않고 대중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을 향유할 거라고 말이다벤야민에 따르면 변화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중들의 예술인식은 정치적으로, 예술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을 가지고 새로운 영향을 발휘해야 했다.

 

 

 

벤야민은 영화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던 시대에 살았다.  실제로 그는 영화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가 굿즈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여행지에서, 미술관에서 엽서를 사는 이유는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 풍경들을 보관하며 계속해서 그 감흥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대중의 관심은 대상을 자신에게 더 가까이 끌어와 그것을 소유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이런 엽서 뿐만이 아니라 저마다의 주제로 제작한 굿즈들도 마찬가지이다. 굿즈 제작 자체가 대중적으로 바뀌고 자체적으로 컨텐츠를 생산하며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벤야민이 예상했던 변화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생각했던 대중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예술 향유 스스로 조직하고 또 서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소모임들>

   내가 실제로 작가들의 개인 SNS를 통해서 그들의 작업을 구매하고, 그들의 그런 활동을 동경했던 내가 직접 굿즈를 제작하게 된 것도 벤야민이 말하는 적극적인 예술의 향유가 될 수 있을까? 그동안 굿즈를 소비해오던 나는 18년도 하반기에 길드다에서 제품제작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직접 굿즈를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다. 바로 <소모임들>이다.

   내가 <소모임들>을 구상했던 배경은 이렇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사건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통감각이 만들어진다. 굿즈가 컨텐츠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셜록 홈즈>를 읽은 사람들은 베이커 221번가를 기억할 것이고, 탈핵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탈핵지지 벳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점에서 그 굿즈들은 사람들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시된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곧 상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굿즈를 소유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상대를 알 수 없지만 나와 같은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드는 단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가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하나의 소모임이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감정을 주제로 잡았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드러내고 싶지 않은 감정을 일상적으로 노출시켜 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렇게 주제로 잡은 것이 <권태> <외로움>이었다. 이를 통해서 서로의 상태와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리고 이를 통해서 유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작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는 건 신나는 일이었다. 이전에 내가 구매했던 창작자들이 만든 것처럼, 나 또한 하나의 창작을 하는 것 같았다. 도안을 디자인하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를 하는 것 까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전시를 다녀온 뒤 이런 생각은 조금 바뀌게 되었다.

   나는 18, 19년에 Young Creative Korea(이하 YCK)에 다녀왔다. YCK 100인의 예술가들을 모아 다양한 방면의 창작활동들을 보여준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소모임들>의 발표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년도 발표인 YCKf가 열려 다시 한 번 찾아가보게 되었다. 18년도에 다녀왔던 기억이 꽤나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들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다. 그러나 다시 찾은 YCK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기대했던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작품들보다는 대부분이 거의 창작장르로 참여한 판매부스에 가까웠다. 지하까지 모두 8층에 빼곡하게 촘촘히 모두 다른 부스가 놓여있었고, 작가들은 모두 자신이 제작해온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부스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판매하지 않은 곳에서는 무료로 굿즈를 배포하고 있었다.

   다녀오는 길에, 함께 갔던 수아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은언니 <소모임들>도 조금만 더 하면 저기 나갈 수 있겠는데...?"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복잡미묘했다. 그 곳의 풍경은 예술작품을 보기 위해서라기 보단 시장과 다를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제품을 구매하면서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예술작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인가?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고 난 뒤 내가 했던 <소모임들>에 대한 작업 또한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판매 이후의 내가 작업을 의도했던 것은 그다지 지켜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서를 통한 포착? 이로 인한 유대...? 물론 굿즈를 기획하고 제작했던 것은 길드다에서 하는 행사인 <청년페어>를 준비하면서부터 이루어졌다. 기획에서부터 벤야민이 말했던 변화된 예술가치의 효과를 고려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읽고 나니 내가 제작했던 굿즈는 그 의도가 어찌 되었든 사람들에게 디자인에 대한 만족으로 판매된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감사한 일이지만, 찝찝함이 남았다. 도대체 벤야민이 보았다는 전시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발휘되는 것일까. 물론 나의 기획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YCK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전시에서도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벤야민이 말하는 변화된 예술가치는 도대체 무엇일까?

   굿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취향과 소유욕을 자극시키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개인의 브랜드를 만들고, 그것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일. 그런 일은 점점 예술의 영역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점점 어딘가 알 수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커져만 갔다.

 

 

작가가 만든 굿즈를 전시와 동시에 판매하는 '전시' <취미관>

 

 

 

소유를 넘어서

   굿즈는 이제 예술작업에 있어 떨어질 수 없는 요소다. 자본 시대에 팔려야 하는 역할의 주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무엇이라도 자신의 작업을 상품화해 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취향과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한다면 그것을 구매한다. 벤야민이 기술복제능력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이 다양해진다고 했던 것 반면에 우리는 그저 구매하는 것 이상으로 예술작품의 무엇을 향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구매하는 것을 예술을 향유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벤야민은 짤막하게 예술의 상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의 예술작품이 지닌 새로운 기능들 중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두드러진 기능은 예술적 기능이지만 이 예술적 기능 역시 사람들이 부차적인 기능으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벤야민이 말하는 예술적 기능이 부차적인 기능으로 된다는건 예술이 상품으로 변화했을 때를 의미한다. 예술 작품이 더 이상 새롭게 생겨나는 사물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술작품의 기능도 없애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때엔 예술작품에 소유 이외에 어떠한 기능이 남게 될 것인가? 소유는 남을 것인가? 이에 대해 벤야민은 지금까지 몇 번의 예술사에서 논란이 되어 온 것처럼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맞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몇몇 전시회는 전시이자 동시에 판매를 함께 하고 있다. <취미관>이라거나 <구슬모아 당구장> <굿즈모아 마트>의 경우가 그렇다. 굿즈의 생산은 더 이상 새로운 컨텐츠의 생산을 넘어서 전시가 되는 컨텐츠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미 우리는 새롭게 바뀐 예술작품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에 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그 전시는 판매와 소비를 원리로 구성되어있다. 벤야민이 예술을 향유하는 것의 다양성을 얘기했다면, 나는 그것에는 구매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그 이상을 위해서 고민해 가야 할 것이다.

Writings/이동은의 [한문이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9. 5. 16.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