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페어①-광주전시> 우와! 이런 전시는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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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런 전시는 처음이야


<광주, 기억의 미로> 전시를 보고..




불을 키는 걸 깜빡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어두컴컴한 전시장. 신기하게도 랜턴을 들고 다니며 전시를 보는 구조였다. 전시장 앞 데스크에는 광주 5·18민주화 운동의 개요가 적힌 종이, 광주의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랜턴들이 있었다. 랜턴을 들고다니며 글과 사진을 읽으니 주위가 안 보여서 한 글자 한 글자에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미 5·18 대한 수많은 텍스트와 영상자료를 본 길 위 친구들은 마지막으로 광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한다. 5·18에 대해 공부하는 내내 고통스러웠던 한 친구는 왜 더 고통스럽게 광주까지 내려가야하냐며 여행에 반대했다고. (나중에 생각이 바뀌었지만) 아무튼 이들이 광주에 내려가서 처음 방문한 곳은 옛 광주 도청이었다. 하지만 옛 광주 도청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시아 문화전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단장되어있었다. 건물에 박힌 총알, 핏자국등은 새하얀 페인트로 가려져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곳이 광주 시민군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옛 도청이었다고는 생각도 못 할만큼. 이에 길 위 친구들은 매우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고 한다. 친구들이 본 국가가 5·18을 대하는 태도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옛 일은 잊고 새로 시작하자' 였다.







그래서 광주 시민들은 "그래요, 다 잊어버립시다" 하고 납득을 했을까? 아니었다. 제작년부터 지금도 계속 일부의 사람들은 옛 도청을 그 당시 상황처럼 복원하자고 농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구도청 별관의 기록물 전시관의 안내원은 끊임없이 그 날의 기억을 말해주려고 애썼다고 한다. 길 위 친구들은 국가가 아무리 광주의 기억을 묻으려고 해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그 날의 기억을 꺼내려고 노력하는 것 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전시관 가운데에 놓여있는 타자기와 타자기로 쓴 친구들의 글이 인상깊었다. 특히 초빈의 글 중 가장 인상깊었던 글이 있다.


' 슬픔과 연민으로만 5·18이나 4·3사건을 대하는 건 이러한 사건을 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아닐까? 그저 연민을 느끼고 "참 안타까운 일이었어" 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버린다면 보지 못할 사건의 이면들이 있다.'


슬픈 일이라고 감정적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감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슬픔의 고통으로 더 깊숙히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길 위 친구들은 광주 여행을 통해 슬픔과 연민만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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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집이 광주라서 친구들의 여행 기록이 마음에 많이 공감되었던게 있었다. 친구들이 갔던 거리와 건물이 모두 집 근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18에 관련된 거라면 쉬지 않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공감간다.


그런데 참.. 나는 옛 도청 복원을 하자는 농성이 있기 전까지는 마냥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세워진게 좋았다. 거대한 문화공간과 예쁜 산책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또 광주에선 잘 볼 수 없는 길거리 공연과 플리마켓을 주말마다 볼 수 있으니깐. 동네 주민으로서 그저 그런게 좋았던 것 같다. 사실 그곳이 옛 도청이었다는 걸 안지도 별로 안 됐다. 복원 농성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끼리 산책을 하다가 옛 도청 복원 동의 서명을 하며 국가가 기억을 지우려 한다는 걸 알았다. 화가 났지만,, 화가 났다.. 


지금도 농성을 하고 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정말 복원을 하기 전까지는 끝이 나지 않을 농성이라는 걸 전시를 통해 직감했다.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어떻게든 말하고 싶어하는 저분들이 돌아가시면 5·18 운동은 '그땐 그랬었지'도 아닌 '그땐 그랬었데' 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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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드다(多)
작성일
2018. 12. 7. 17:05